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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수운 최제우, 영원한 진리의 화신

기사승인 2020.11.13  22: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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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은 사라진 우리 한알님 종교 원형의 부활이다.

 

 

호천금궐 상제님도 불택선악 하신다네- 안심가/용담유사

한알님은 지공무사하신 마음 불택선악 하시나니-도덕가/용담유사

 

▲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존영. 그는 젊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구도와 세상 실정을 돌아본다. 고향경주에 돌아와서 도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면 기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고 적멸굴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 등 수도에 힘쓰던 중 접신현상을 체험하며 한알님을 만난다. 서기1860년 한알님으로 부터 신령한 부적과 주문을 받아 치료와 광제창생에 나서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하는 리조선 왕조정권에게 죽임을 당한다.

단군조선이 문을 닫은 이후(서기전 238년) 우리 역사는 외래 종교 사상의 싸움 마당이 됐다. 단군조선을 이은 나라들에 도교, 불교, 유교가 들어와 역사는 내리 막길을 걷는다.

부여는 물론이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이 단군조선의 후예들이다. 이 나라들의 개국신화와 유적을 보면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부여의 동명왕 신화는 하늘에서 큰 계란 같은 빛이 부여개국 시조 탁리국의 시아侍兒에게 들어와 임신하여 동명을 낳았다고 한다.

하늘에서 알 같은 빛이 내려왔다는 것은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천신인 한웅천왕이 태백산정 신단수에 내려와서 신시가 열렸다는 개념과 통한다.

부여나 신시를 이은 단군조선이나 모두 하늘 자손이라는 점에서 통한다. 고구려도 삼국유사 왕력표에 주몽이 단군의 씨라고 직접 말하고 있다.

개국신화에도 유화부인인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임신하였고 알을 낳았다. 여기서 태어난 이가 주몽이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점에서 하늘 자손임을 나타내고 있다.

백제는 부여에서 나왔다. 부여가 하늘 자손이므로 백제도 하늘 자손이다. 신라도 알, 나무, 흰 닭 등의 신화소가 등장하는데 한웅천왕 신화와 닮아 있다. 가야 김수로왕 개국신화도 하늘에서 알이 내려왔다고 한다. 하늘 자손임을 나타낸다.

모두 단군조선의 개국신화와 닮았다. 이는 부여와 부여 이후 등장하는 나라들이 모두 단군조선의 후예임을 말한다.

이런 나라들이 단군조선이 문을 닫자 외래 종교 사상을 받아들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도교는 물론 불교가 들어왔다.

유교도 고운 최치원을 보면 이미 신라에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유불도 어느 종교도 지배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고려 시대로 들어오면서 불교가 국가종교가 되고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는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탄압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고유종교도 대등하게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팔관회에서 행해진 온갖 놀이와 천령, 오악, 명산대천, 용신에 굿을 하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리조선 시대에 들어오면 중국 성리학이 국가 지배이념이 돼 다른 종교사상은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음사나 이단으로 찍어 탄압했다. 성리학을 따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사회구조를 만들어 버렸다. 기득권에 들어가려면 중국 유학을 해야 했기 때문에 불교나 도교 다른 학문은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서기 19세기 말까지 사회지배 세력으로 들어가는 문이 중국 유학을 시험과목으로 하는 과거시험이었다. 5백 년 동안 탄압으로 우리 고유의 종교사상은 말살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때 수운 최제우가 나타나 동학을 외쳤다. 동학은 수운이 접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접신하는 장면을 수운 본인이 상세하게 기록했는데, 동학 경전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 자세하게 나온다.

현재 무당들이 접신하는 것과 하나 다르지 않다. 이른바 무당의 신내림과 본질에서 같다. 한알님에게 신령한 부적을 받아 자신도 치료하고 다른 사람도 치료한다.

무당의 세 가지 기능 중 병 치료와 다르지 않다. 신 내림하기 전에 무당이 신병 또는 무병을 앓는데 수운이 접신하기 전에 겪는 병증도 이와 비슷하다. 몸과 마음이 이유 없이 춥고 떨린다.

수운에게 접신한 존재는 우리 고유의 신 이름 한알님이다. 무당에게 내린 최고신도 한알님이다. 통상은 단군이 내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수운은 자신에게 내린 신을 귀신이라고 하기도 하고 상제, 천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한자를 사용한 동경대전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고, 순 한글로 쓴 용담유사에서는 상제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한알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한알님의 속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선악을 선택하지 않는 존재라고 한다(호천금궐 상제님도 불택선악 하신다네- 안심가/용담유사).

또 한알님을 더 자세하게 풀면서 지극히 공적인 존재지 사적인 속성이 없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한알님은 지공무사하신 마음 불택선악 하시나니-도덕가/용담유사).

인간은 자라면서 마음이 생겨나고 끝없는 선택 속에서 살아간다. 좋으냐, 싫으냐 속에서 살아간다. 어린애가 좋으냐, 싫으냐를 가장 잘 드러낸다.

싫으면 바로 울음과 몸부림으로 저항한다. 좋으면 웃음 짓으로 나타낸다. 성숙한 성인이 돼도 마찬가지다. 좋고 싫음의 굴레 속에 있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겠다는 선택이 명확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싫어도 하는 경우가 많다. 늘 선택해야 하는 이원성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생각은 가치판단의 다른 이름이다. 어떤 것이 선하고 어떤 것이 악한지 판단을 하며 살아간다.

선악개념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는 악한 것이 다른 곳에서는 선한 것이 될 수 있다.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선한 것이 악한 것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수운의 한알님은 선악으로 대표되는 이런 이원성을 초월해 있다. 선과 악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말은 선과 악을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수운의 한알님과 같은 속성을 기독교 경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그 해(햇빛)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신다(마태복음 6장 45절)”

해를 비추는 데 악하다고 하여 안 비춰주고 선하다고 해서 비춰주지 않는다고 한다. 선인과 악인을 선택하여 비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도 마찬가지다. 의로운 사람에게만 내려주고 불의한 사람에게는 ‘너는 불의하니 안 내려 줄 것이야’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예수가 한 말인데, 예수의 하나님도 수운의 한알님처럼 선과 악을 선택하는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운의 한알님과 예수의 하나님이 본질에서 같은 속성을 띠고 있다.

이번에는 불교로 가보자. 불교의 대표 경전인 반야심경을 보자. 이 불경은 사리자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사리자에게 관자재보살이라는 부처가 공空을 색色을 포함한 오온五蘊과 비교하여 말하고 있다.

여러 가지 공의 속성을 예를 들어 말하는데,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는 말이다. 더럽다, 깨끗하다는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더럽다, 깨끗하다는 이원성을 초월해 있다.

결국, 수운의 한알님과 예수의 하나님 그리고 불교의 공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수운에게 내린 한알님의 속성은 우리의 다른 고전에서는 없을까?

대종교 경전으로 쓰이는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보자. 이 삼일신고는 태백일사의 소도경전본훈에도 실려 있다.

삼일신고 진리훈에서 성명정性命精의 세가지 진리를 말하면서 성性은 무선악無善惡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신一神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일신은 우리말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한아님의 소리가 나는 표현이다. 한아님은 어원을 추적해 가보면 한알님이다. 한알님에서 편하게 발음하고자 하는 버릇때문에 ㄹ 을 탈락시켜 한아님이 됐다.

아리랑이 원래 알이랑이었는데 편하게 소리내고자 ㄹ을 빼먹고 아리랑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개으른 혀라는 말이 여기서 통한다.

알에는 신이라는 뜻이 있다. 태양은 태백일사의 한국본기에 따르면 신이다. 태양은 알로도 통한다.

결국 태양은 알이 되어 큰알 곧, 한알이며 신의 경칭 님 자를 붙여 한알님이 된다. 우주알이라는 말에서도 엿 볼 수 있듯이 이 세계는 한알로 돼 있다는 것이다.

삼일신고는 성에는 선악이 없고 이것은 일신 곧, 한알님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삼일신고의 한알님은 선악이 없는 존재다. 가치판단, 분별함이 없는 수운의 한알님과 속성이 같다.

삼일신고는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다. 단군세기를 보면 단군조선 이전부터 내려오는 우리 겨레의 오래된 경전이다.

이렇게 볼 때 수운은 단군조선은 물론 이전의 우리 겨레의 종교사상의 원형인 한알님을 부활시켰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한알님은 현재 전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불교나 기독교 등 거대 조직종교의 최고 가르침과 하나 다르지 않다.

내용을 보면 세계종교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 우리 심성과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더구나 미신으로 천대받는 무당 굿과 깊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토속에 깊이 뿌리 박고 있다.

불택선악하는 한알님이 무당 굿의 접신에 뿌리 박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외래종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단군조선이 문을 닫은 이래 외래 종교사상이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는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중화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외래 종교사상이 극한을 달리던 서기 19세기 후반 수운 최제우라는 존재가 나타나 죽은 우리 혼을 부활시켰다. 그가 한알님을 전파하자 외래 종교사상인 중국 유학 성리학이 혹세무민한다며 그를 죽여버렸다.

그가 직접 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가 남아, 우리가 외래 종교사상의 종이 아니라 본래 주인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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