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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불위 애첩이 낳은 진시황제

기사승인 2020.05.31  20: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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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제는 재상과 이복동생들을 죽인 뒤 친정을 할 수 있었다.

글: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신한대학원 교수)

 

진시황은 진나라 장양왕과 조나라 여불위 애첩 사이에서 태어나

여불위 수하 노애와 여불위 애첩, 조희, 사통해서 두 아들 낳아 

노애의 반란 실패 후 모친, 조희와 이부 동복의 두 동생을 살해

 

▲중국 섬서성 서안에 있는 이른바 병마용갱의 병사상. 머리모양이나 옷차림새가 중국 중화족이라고 하는 화하족이 아니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 onevibe, 출처 Unsplash

중국 왕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은 진 시황제일 것입니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고 중국을 발전시킨 인물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도 아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방궁을 짓고, 불로장생을 꿈꿨으며,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남아있는 병마용갱을 만든 왕. 우리에게 진 시황제는 이런 것들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황제는 기원전 259년 진나라 장양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장양왕이 왕자였던 시절,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갔을 때 조나라의 거상 여불위(呂不韋)의 애첩, 조희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 후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여불위가 조희를 장양왕에게 주선해 혼인까지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시황제는 진나라가 아닌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장양왕이 죽자, 시황제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진나라 국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게다가 몸이 매우 허약하기까지 했습니다.

시황제는 아직 친정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장양왕 때 재상의 자리에 오른 여불위와 시황제의 생모 조태후가 섭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태후는 여불위의 애첩 출신인 만큼 행실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불위가 자신의 수하로 있던 노애라는 자를 환관이라고 속인 뒤 조씨의 처소로 보내자, 그와 사통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불륜을 저지른 셈입니다. 급기야 노애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아들까지 낳고, 조씨와 노애는 함양에서 떨어진 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진왕이 성인식 때문에 분주한 틈을 타, 노애가 난을 일으키려다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왕의 옥새와 태후의 인장을 위조해서 군사를 발병하여 장차 왕의 숙소인 기년궁蘄年宮을 공격하려고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를 알게 된 시황제는 군사를 출동시켜 노애를 공격했고, 그는 패배한 뒤 달아났습니다. 시황제는 노애를 생포하는 자에게 100만 전을 내리고 죽인 자에게는 50만 전을 하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체포된 노애는 사지가 찢기는 능지처참을 당했습니다. 또한 시황제는 그의 종족을 멸했습니다. 어머니 조태후와 노애 사이에 낳은 아들 2명을 살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시황제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여불위를 재상의 자리에서 내쫓으며 자결을 명했습니다. 여불위가 그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자 비로소 시황제의 친정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덕일 mukto@naver.com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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