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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남을 흡수통일? 뱀이 코끼리 삼킨 격

기사승인 2020.05.25  18: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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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왕적 권한 가진 대통령의 결단으로 통일은 쉽게 올 수 있다.

 

분단극복과 통일, 외국사례를 배워야

남북분단은 미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참전국 부인에서 온 것

북한이 남한을 흡수 통일한다는 것은 코끼리 삼킨 뱀 같은 꼴

대만은 초기 중국과 포격전 했으나 전면 교류로 전환 한 몸 돼

예멘은 통일했으나 급하게 추진 준비부족 다시 갈라져 내전 중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지위 국토분단위기서 영세중립국으로 독립

영국과 북아일랜드간 분쟁은 국민투표로 국민 뜻에 따라 독립

남북한은 정치보다는 전면교류를 통한 통일 기반 닦기 나서야

 

▲ 이병록 정의당 한반도평화본부장이 조선개국 4353.05.24. 광화문아침에서 통일학당이 연 통일학 강좌에서 외국사례에서 교훈을 얻는 통일론을 역설하고 있다.

“어떤 모임에 갔는데 북한이 남한을 흡수통일하면 어떻게 하냐며 무조건 북한을 적대시하고 두려워했다. 전력사정이 안 좋아 밤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북한은 암흑천지다. 불도 못 켜는데 우리가 흡수당할 것이라고 한다. 글쎄 뱀이 코끼리를 삼켜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나. 절대 못 살아남는다.”

조선개국 4352.05.24. 서울시 안국역 2번 출근 맞은편 광화문아침에서 통일학당 강사로 나선 정의당한반도평화본부장 이병록 전 해군제독이 이와 같이 일갈했다.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일부 극우세력의 시각에 대하여 남북한 국력차이를 뱀과 코끼리를 비유로 들어 간단하게 풀어준 셈이다.

이날 이 전 제독은 남북한이 결국 통일로 가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그는 외국사례를 들어 해법을 찾고자 했다.

그는 본격 강의에 앞서 우리민족이 분단된 원인을 짚어 봤다. 근본원인은 우리가 국력이 약해 일본에 먹힌 것이고 일제 36년 식민통치를 받은 것이다.

두 번째는 2차 대전에서 우리는 패전국이 아닌데도 미국이 38도선을 기준으로 나라를 분단 시켰다. 이 전 제독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을 원망한다고 하면서 그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2차 대전 참전국으로 인정해 승전국으로 지정했다면 분단은 안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폴란드를 예로 들었다. 폴란드는 우리처럼 나라가 망했으면서도 연합국이 참전국으로 인정해 2차 대전이 끝나자 곧바로 독립국으로 일어서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참전국 지위를 부여 받지 못해 원래는 일본이 여러개 지역으로 분단돼야 하는데 거꾸로 우리가 분단됐다고 밝혔다.

이어 분단 된 나라들이 어떻게 독립국이 됐고 독립의 길을 걷고 있는지 살펴봤다. 먼저 대만과 중국관계를 소개했다.

흔히 중국과 대만을 양안관계라고 한다. 장개석의 자유중국 군대가 공산당 모택동 군대에 패하고 대만으로 들어갔다.

초기에는 양안 사이에 놓인 금문도를 중심으로 격렬한 포격전을 벌이는 등 상시 전시상태였다. 그러다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표현은 각자 알아서 한다는데 동의했다. 또한 양안 간에 전면적인 교류를 허용했다.

현재는 정치가 서로 상황에 따라 서로 으르렁 거릴 뿐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사실상 하나의 중국이 된 상태다. 중국은 대만인에게 중국공민증을 발급하고 대만은 중국인에게 4년 체류를 인정하고 대만 사회보장 제도를 중국이 도입하는 등 하나의 중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다.

중동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동남쪽에는 예멘이 붙어 있다. 이 나라는 서기1904년 오스만 투르크가 북쪽을 점령하고 남쪽은 영국이 점령하여 분단됐다.

2차 대전 후 북부는 자본주이 체제로 남부는 사회주의 체제로 남아 분단이 지속됐다. 서기1972년 남북 정치집단간의 통일합의와 정상회담을 통해 통일로 접어들었다.

통일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때 까지도 국제사회나 남북예멘 국민은 통일한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정파 간의 급조된 합이에 지나지 않았다.

형식면에서는 통일 됐지만 준비 안 된 급조된 것이라 남북예멘인간의 이해관계 충돌로 다시 분단으로 돌아가서 내전으로 돌입한다.

오스트리아는 2차 대전에서 독일에게 병합돼 독일과 운명을 같이하는 신세가 됐다. 패전 후 오스트리아도 독일처럼 연합국에게 점령당해 4개 지역으로 분할된다.

당시 소련의 입김이 가장 강했는데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으로서 주권을 완전회복 시켜 주겠다는 소련을 설득하고 영세중립국으로 남겠다는 각서를 제출한다.

영세독립국으로 국제연합에도 가입한다. 미국은 오스트리아가 소련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영세독립국을 인정하고 이어 마샬플랜으로 2 차 대전 패망으로 폐허가 된 오스트리아를 재건시켜준다.

다음은 북아일랜드다. 아일랜드 섬은 서기1600년대에 영국이 식민지로 삼은이래 아일랜드의 무장투쟁으로 피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서기1921년에 와서야 아일랜드와 영국간의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대영제국 내에 아일랜드 자치령 형태로 자리 잡았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북아일랜드 6개주만 계속 영국령으로 남고 나머지는 독립국이 됐다. 분단국이 된 셈이다.

북아일랜드에서는 무장투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기1998년에 와서야 영국과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북아일랜드가 남 아일랜드로 붙을 것이냐 영국과 통합할 것이냐는 북아일랜드 주민의 투표에 따라 결정한다고 합의했다. 현재는 공동정부 형태로 이끌고 있다. 

이 전 제독은 외국 여러 나라의 분단극복과 통일로 가는 여정을 설명하면서 분단은 비극이고 통일만이 분단국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피력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위기다. 안보, 경제, 사회위기가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다. 안보위기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중간의 패권경쟁으로 나타나고 있고 일본에게 집단자위권을 허용하고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나가고 있다. 이는 구한말의 청나라와 일제의 조선반도를 둘러싼 경쟁과 유사하다.

경제위기는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경제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고용 없는 산업구조가 돼가고 있으며 청년실업, 노령화 등으로 민간, 공공부분 부채가 각각 1천조 원에 달한다.

사회위기는 이념, 지역, 정파 등 갈등이 구조화하는 양상으로 나타고 있다. 정치권은 극한대립으로 나가고 있고, 공동체 보다 정파와 개인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는 이 모든 문제를 근본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통일에 있다고 강조했다. 통일을 어떻게 진행시켜 나갈 것이냐에 대해서는 남북한 전면교류를 내세웠다.

이를 통해서 남한의 경제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북한도 남한 수준의 경제력이 올라가도록 유도한다. 이는 어느 일방의 압도적인 우위 속에서 흡수통일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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