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도 우리처럼 설날부터 대보름날 까지 아무일도 하지않는 풍습이 있었다.

글: 공관 (북동중앙아시안연대 한국위원회 중앙위 의장)

 

몽골 설날은 시간권력을 쥐고 있는 간단사의 라마승려가 정해

고대왕조에서는 통상 왕이 달력을 정해 시간권력을 쥐고 있어

대산 김석진 선생, 역易은 동이족에서 시작됐다고 주장

우리는 원래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일체 노동을 하지 않아

대보름달을 흰달이라고 하여 몽골도 대보름까지 일하지 풍습

 

▲ 몽골의 설날 차강사르에서 제상을 차려놓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자료출처: http://peak.mn/news/toim-medee-uikh-ungursun-doloo-khonogt

 

몽골의 설날, 차강사르


‘차강 사르(ЦАГААН САР)’는 ‘하얀 달’이라는 뜻이다.

농경민에게만 세시풍속이 있는 것이 아니다. 유목민에게도 고유의 세시풍속이 있다. 그중 하나인 설 명절은 몽골사람들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 설날은 달력(역법曆法)에 정해져 있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이다. 설날을 중국에서는 ‘춘절’로, 몽골에서는 ‘차강사르’라 한다.

2004년 1월, 몽골 갔을 때였다. 마침 설 명절 기간이었다. 음력 원단이 지났는데도 차강사르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과는 달랐다. 음력 1월 1일이 꼭 차강사르는 아니었다. 모두들 간단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차강사르 날을 정하는 것은 울란바토르 간단사의 라마(승려)가 정했다.

시간의 권력을 라마들이 쥐고 있다는 것이 참 특이했다.

신성로마제국의 교황인 그레고리오 13세가 태양력을 공포했다. 그레고리력이다. 종교가 시간의 권력을 가진 것을 상징한다. 시간의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정치적 함의도 크다.(*1)

고대 왕조는 시간의 권력(책력)을 왕이 쥐고 있었다. 그것은 곧 하늘과 이어지는 제사권과 연결되었으며, 일반 백성들의 생활 주기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어느 역사책에서 보았다.

중국 황제가 주변국에 매년 책력을 나누어주었다고 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바퀴 돌 때 그 시작점을 어느 때로 했는가는 고대 왕조에 따라 달랐다. 왕조가 바뀌면 역법도 바뀌었다. 그것이 그 왕조의 정통성을 다지는 일이었다.
그 점에서 세계의 표준 시간이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가 중심에 있다는 것도 상징하는 바가 있다. 시간대의 세계 공인은 영국 중심의 세계패권주의에 상응하는 하나의 특권이었다. 이 역시 국제정치 패권의 범주에 들어간다. (*2)

지금도 몽골의 정신적 지주는 티벳트 불교인 몽골 라마들이 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역학易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과 역曆calendar의 관계를 잘 모른다. 소박하게 역법曆法은 천문학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우리의 고대사에는 관심이 많다. '북동중앙아시안연합운동'의 뿌리가 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을 동이 풍족(風族)이라고 일컷는다. 평생 주역을 전공한 대산 김석진 선생은 역易의 뿌리가 우리민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상고시대의 동이(東夷)역을 한역(桓易)”이라고 했다. “고대의 역인 연산(連山). 귀장(歸葬). 주역(周易)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팔괘의 획을 처음 그은 복희씨는 환웅(桓雄) 왕조시대의 인물이고, 우리 동이민족의 성씨인 풍씨(風氏)라고 합니다.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은 우리나라 고유의 도를 풍류도(風流道)라고 말씀하셨죠” (*3) 했다.

태호복희씨에 대해서는 중국에서도 동이 풍족으로 인정하는 듯하다. 『손자병법』에 대해 깊이 연구한 이링李零은 「행군편」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태호복희씨는 동쪽인데, 그의 후손인 풍씨風氏가 작은 나라를 이루어 지금의 산동성 취푸曲阜 일대에 모여 살았기 때문입니다”(*4)고 적었다.

현재 추명학에서는 일년의 기점을 입춘으로 본다. 옛 연산역과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는 설날부터 보름 동안은 일체의 노동을 하지 않고 쉬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몽골이 그랬다. 중앙부처를 비롯해 관공서가 개점 휴무나 다름없었다.

공무원들도 한 달 가까이 놀았다. 흰달 한달이 쉰달인 모양이었다. 하긴 고향 가는 데 오는 데만 해도 일주일은 걸린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명절을 즐겨하지 않는다. 이 세상살이의 관습인 통과의례도 대부분 무시한다. 번거롭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이 속해 살았던 삶의 가치관이 자리잡은 것이다. 거기에 더해 명절 때도 고향은 갈 수 없다. 고향에 진 빚이 많기에 그렇다. 그래서 남북몽골이나 시베리아, 중앙아시아를 떠돌았다.

경자년 새해, 페벗님들의 행운을 바래봅니다.

참고
*1: 시사저널, 1580호, 2020.01.18. 세계 각국의 역법은 무엇일까.
*2: 외르크 뤼프케, 『시간과 권력의 역사 - 인간 문명 그리고 시간의 문화사』 김용현 역, 알마, 2011.
*3: 김석진, 『대산주역강의 』 【1】 (上經), 한길사, 초판. 11쇄. 2004. 57,58쪽.
*4: 리링, 『전쟁은 속임수다』 2012, 김승호 역, 글항아리. 573쪽.


2020. 설날 새벽에. 인릉산 아래에서, 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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