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문화재와 사료 그리고 일본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기사수정ㅣ서기2016.04.06.12:40

일본의 역사연구단체, 300만개가 넘는다...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침략은 집요하다. 여기에 터잡아 영토침략으로 까지 확장하고 있다. 독토 침탈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침략의 이면에는 일본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 연구와 일본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지, 사관은 어떤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역사외곡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필자는 일본에서 그들과 함께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만큼은 자세히 알고 있다.

가. 일본 역사학계의 동향

일본역사학계는 철저한 학연 중심으로 연결 되어있다. 일본역사는 일본본사와 외사로 나누어져 있다. 일본본사는 일본인의 기원을 비롯한 정통일본에 관련된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다. 정통일본역사는 다음과 같다.

<가-1 자료 : 일본본사의 분류>

1. 일본고대사 - 일본본토를 연구하고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연구하는 역사

2. 일본대외사 - 일본이 벌였던 국제전쟁과 외교에 대해 연구하는 역사

3. 일본근대사 -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대동아 전쟁에 대해 연구하는 역사

4. 일본현대사 - 일본의 대동아 전쟁 이후의 현대 역사

<가-2 자료 : 일본본사 연구 학파와 연구소>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일본 도쿄에 있는 공식으로 등록된 4개 대학의 역사 관련 연구소만 소개한다.

1. 일본고대사

- 도쿄대학교 : 죠몬시대 석기연구소, 야요이시대 벼농사 연구소, 대륙관계학 연구소, 백제연구소, 임나가야연구소 (이외 사설 연구소 760여개)

- 메이지대학교 : 일본고대문화연구소, 일본백제연구소, 일본가야문화연구소, 일본본토역사연구소(이외 사설 연구소 493개, 2010년 기준)

- 게이오대학교 : 일본해양연구소, 일본아이누문화연구소, 니혼쇼키(일본서기) 연구소, 조선통신사연구소 (이외 사설 연구소 471개, 2010년 기준)

- 와세다대학교 : 일본오키나와유구문화연구소, 헤이안시대복원사업소, 아미테라스오오미카미 연구소, 일본고대무술연구소 (이외 사설 연구소 516개, 2010년 기준)

2 일본대외사

- 도쿄대학교 : 일본고대외교문헌연구소, 일본외교전쟁서고연구소, 일본중세역사연구소, 분노쿠게이초의(임진왜란) 전쟁연구소, 일본전국시대사무라이복원협회 (이외 사설 연구소 1,388개, 2010년 기준)

- 메이지대학교 : 고대전쟁연구소, 영토분쟁연구협의회, 대마도역사연구소, 아이누족전투문화복원사업회 (이외 사설 연구소 1,275개, 2010년 기준)

- 게이오대학교 : 분노쿠게이초의(임진왜란) 전쟁무기와 사회연구회, 일본해양세력연구소 (이외 사설 연구소 1,015개 -2010년 기준)

- 와세다대학교 : 일본전국시대연구소, 여몽전쟁연구소, 일본막부정치문화연구소, 도쿠가와가문연구원(이외 사설 연구소 1,174개, 2010년 기준)

3. 일본근대사

- 도쿄대학교 : 일본천황연구소, 정한론연구소, 대동아전쟁연구소, 만주국연구소, 고토수복협의회,일본근현대사연구소 (이외 사설 연구소 112,339개, 2010년 기준)

- 메이지대학교 : 정한론국제연구협회, 다케시마본토수복사무국, 일본근대사연구소, 신선조정신선양협회 (이외 사설 연구소 102,300개, 2010년 기준)

- 게이오대학교 : 대동아전쟁연구소, 조선정벌연구소, 만주수복위원회 (이외 사설 연구소 99,337개-2010년 기준)

- 와세다대학교 : 극동중세사연구소, 일청,일러전쟁연구소, 생화학무기실험연구소 (이외 사설 연구소 93,400개, 2010년 기준)

4. 일본현대사

- 도쿄대학교 : 다케시마수복연구회, 시마네현역사연구회, 오키나와유구역사연구소, 일본정치사연구소 (이외 사설 연구소 7,503개, 2010년 기준)

- 메이지대학교 : 공식연구소 없음 사설연구원 12,000개, 2010년 기준

- 게이오대학교 : 현대문화연구소, 한류연구협회 사설 연구소 없음

- 와세다대학교 : 일본현대사연구소 사설 연구소 없음

일본은 도쿄에만 공식연구소 뿐 아니라 사설연구소 숫자를 보면 앞글에 언급한 학교 포함해서 60만여 개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서울의 경우 공식 및 사설연구소가 총 98개에 지나지 않는다. 규모면에서도 일본의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다. 한일 간 역사전쟁에서 결국 우리는 98명으로 일본 도쿄의 60만 군대와 싸우고 있는 셈이다. 전국적으로 봐도 대한민국에 공식기관 또는 사설로 등록된 연구소는 208개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는 300만개가 넘는다. 물론 서기2010년 기준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208개 역사연구소도 우리의 관점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단체는 극소수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관련 출판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부분 일제의 식민주의사관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사관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서울대 출신의 ‘낙성대연구소’의 경우도 일제의 식민통치를 미화하며 경제 근대화론을 주창하는데, 일제식민통치가 우리나라를 근대화 시켰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일본제국주의 침략사관과 닮아 있다.

일본의 역사 연구소들은 국익에 역사연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역사 외곡도 서슴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연구소에 복무하는 자들은 더욱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고 연구소도 더 늘리는 추세에 있으며 일본정부는 이들 역사연구소에 일본 세금수입의 13%라는 천문학적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1.5%정도의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른바 재야사학으로 알려진 사설 역사연구소에 대한 국가 지원금은 전무한 상태다.

일본의 역사연구는 철저한 학파위주로 진행되며 어느 역사연구소를 나왔느냐에 따라 세력이 나눠져 있다.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세분화 되어 있다. 우리나라 역사연구소도 이러한 행태를 이어 받고 있다.

일본의 역사연구는 다른 말로 국학이라고 불리는데 이러한 학파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1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시다 쇼인’이 개화파를 양성하면서 그의 송촌학파가 생긴 것이 시초다. 이를 시발로 하여 수많은 학파가 갈라져 나간다. 이는 크게 일본 정사를 연구하는 정사학파와 본사를 연구하는 본사학파로 나누어진다. 먼저 정사학파의 활동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1 자료>

1. 역사 왜곡 - 일본 역사 연대 조작 및 침략 전쟁 미화

2. 영토 분쟁 - 해당 영토의 역사를 연구하고 일본사와 대입, 그것을 주제로 발표

3. 대외 왜곡 - 일본의 대외사를 전면 조작

4. 사관 왜곡 - 교과서 왜곡, 세계 역사의 판도를 일본을 중심으로 발표

다음은 본사학파의 활동내용이다.

<나-2 자료>

1. 역사 측정 - 첨단 고고학 기술을 동원하여 사실적 근거 발표

2. 역사 왜곡 비판 - 바른 역사 정립을 위해 정사학파와 첨예하게 대립

3. 주축 계열 - 대부분 재일조선인과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

4. 정부 비판 - 일본 우익같은 전쟁광신도등을 철저히 경계하고 다양한 세미나와 학술회의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

5. 헌법 개정 반대 - 일본이 전쟁국가로 다시 거듭나는 것을 경계 (특히 평화헌법 9조 개헌은 위법 선언)

필자의 경우는 본사학파계열 출신이다. 일본은 헌법 차원에서 사상과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소를 지원하고 있는데 먼저 그 연구소에 대하여 재정을 지원할 수 있는 단체인지를 검토를 한다. 이것이 확정되면 예산을 아낌없이 지원한다. 이러한 규정이 헌법에 명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3 자료>

<일본 쇼와헌법 문화사 관한 법률 제7호 출처>

第11条:思想と歴史を研究する研究所や団体は、無償サポートと研究の自由を認めている。(사상과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소와 단체에 대해서는 무상지원과 연구의 자유를 인정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헌법은 고사하고 역사연구에 대한 제대로 된 법률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일본인들의 역사연구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다. 일본 ‘재야학파’들의 역사연구 단면을 볼 수 있는 정보들이다.

<나-4 자료>

<온라인 대표>

야후 제팬 : 블로그 1,970,774개 , 모임방 길드 1,076,663개

구글 제팬 : 블로그 2,460,566개 , 길드모임 6,670,340개

<오프라인 대표>

역사 과외 : 과외 선생만 900,000명 츠쿠네 문화사, 고일본문화사 등 학술지 선생만 100여만 명

역사 웅변대회 : 매년 도쿄 청소년 역사 모임회에서 NHK가 중계할 정도의 인기

역사 아동체험학교 : 1,800,000여개 추정

일본을 오늘날 강대국으로 이끈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시다 쇼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歴史を学ばない民族は死んでいる廃人であり、歴史を学ぶ民族は永遠に消えない灯りです。"

" 역사를 배우지 않는 민족은 죽어있는 산송장이고, 역사를 배우는 민족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등불이다."

일본의 역사연구는 청소년층에게 특히 지속적인 인기분야이다. 그래서 유능한 청소년 사학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일본은 소위 "영재개발원"을 만들어 모든 분야의 영재들을 집중 양성하고 있는데 역사분야는 늘 포화상태라고 한다. 일본이 역사를 국민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의 경우 식민사관에 따라 지식암기수준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절대로 청소년들이나 일반 생민들에게 인기과목이 될 수 없다.

▲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서, 일본서기(국립일본국회도서관 소장)- 일본서기는 역사왜곡의 대명사로 불린다. 특히 고대에 일본이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지배 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은 이 일본서기 기사를 근거로 19세기 중후반 부터 우리나라를 다시 지배하기 위하여 광분했다.

나. 일본 학자들의 연구 방식과 역사왜곡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일본학자들의 역사연구방식은 정해진 흐름이 있다. 태평양전쟁을 비롯한 해외전쟁에서 약탈한 문화재와 고서를 철저히 탐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 까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에서 사료를 집중적으로 약탈했는데 이 약탈을 위한 전담부대까지 편성해서 운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전담부대는 박사급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의 이러한 행태는 임진왜란으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의 고니시 유키나가의 <せんじょう>수기에는 이렇게 분명하게 실려 있다.

1) 朝鮮出兵当時私の軍にはカトリックの司祭もいた学者もいた。

해석 : “조선 출병 당시 나의 군에는 천주교신부도 있었고 학자들도 있었다.”

일본군 부대에 편성된 학자들은 해외 식민지에서 수탈한 문화재를 수거하여 분류하고 이것을 일본 ‘황실’의 비밀서고나 도쿄국립박물관 서고, 도쿄대학교도서관 서고 등에 보관하였다. 여기에는 16세기 이전의 것을 약탈해 온 것도 있다.

필자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인 학자들 속에서 학부를 마쳤기 때문에 위와 같은 사항에 관한 실증적 사진이나 자료를 많이 보아 왔다. 그러나 견제가 심하여 사진을 찍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외부로 노출되게 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였기 때문에 필자의 머릿속에만 있다는 것으로 대신한다. 일본은 특히 우리의 문화재와 사료를 약탈해가서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흔히 일본학자들의 연구를 현미경 연구라고 한다. 아주 세세하고 정밀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연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료의 경우 글자 하나하나 절대로 놓치지 않으며 유물의 경우도 흙 한줌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연구한 것을 가지고 학자들 끼리 토론한다. 어떤 때는 일주일을 꼬박 밤을 새워가며 파고들지만 지칠 줄 모른다. 마치 미지의 신세계를 발견하려는 탐험가의 호기심과 설래 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한 다음에는 토론문을 작성하고 자기들 학파의 교수들과 상의를 한다. 이를 통해서 문제점으로 발견된 것을 시정한다. 그리고 최종적인 결과물은 전자 문서화하여 저장한다. 이렇게 약탈한 문화재와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통해서 일본인들은 우리역사본래의 모습을 우리 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특히 우리의 대륙사에 대해서는 우리 보다 몇 백배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일본 학자들의 방향이 두 가지로 갈린다. 사실대로 우리역사를 알릴 것이냐, 아니면 왜곡하여 내놓을 것이냐다. 대부분 후자를 선택한다. 역사를 외곡하기로 결정한 자들은 우리 실제 역사를 외곡하여 학설 형태로 내놓는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우리 역사의 진실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조선사편수회도 마찬가지였고 현대 일본의 연구소들도 극악무도할 정도로 우리 역사의 진실을 왜곡, 날조하여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연구소라는 조직에 몸을 담고 있음으로 역사 왜곡, 날조를 할 수 밖에 없다. 일본정부가 지원하는 돈이 개입되어 있어 양심적 학자들도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우리 역사를 왜곡, 날조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일본의 역사 연구계는 연줄과 고리로 철저하게 짜여 있기 때문에 선배 교수들이나 지도교수들에게 지시받은 역사외곡을 거부할 수 없다. 만약에 어길 경우 학파에서 파문당하거나, 영구제명을 당하여 두 번 다시는 교수가 될 수 없고 심지어 역사연구를 가지고 밥 벌어 먹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낙인은 자기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명단으로 만들어져 향 후 자신의 2세,3세까지도 영향을 미치도록 구조화 되어 있다. 일본의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학문연좌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아 풍요롭게 생활을 보장받지만 설정한 기준을 위반할 경우 이와 같은 사회적 매장과 함께 지원금도 끊겨 버린다. 따라서 이들에게 학자적 양심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제 다음과 같은 필자의 말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 역사를 알아야 진실을 외곡할 수 있다. 모르면 외곡 자체를 못한다. "

 

*글 : 세르게이 정 (북방고고인류학 연구소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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