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사람이 한울이다’는 지금 회자되고 있는 ‘사람이 먼저다’와 상통한다.

 

동학사상 근저에는 민본주의 인간중심사상이 흐른다

현 정권이 외쳐 온 ‘사람이 먼저다’는 최치원 남겼다는 천부경 사상과 어울린다

경주 최부자 집 일화에도 ‘사람이 한울’이라는 동학사상이 녹아 있다.

 

▲ 서기2018.03.03. 3.1민회 '국민개헌 원탁회의'를 치르고 천도교 대교당 앞에 선 손윤 의암 손병희 기념사업회 이사장

“사람이 먼저다.” 최근 2년 동안 이 말이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정치는 지역, 종교, 계층 연령 심지어는 성별 등으로 분열 된 채 갈등과 반목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2017년은 달랐다. 불평등과 경제양극화 등 한국 사회 모순이 격화되면서 지옥조선이라 부르던 젊은이들 외에도 지역 종교 연령을 초월하여 모든 한국인들이 이 하나의 화두에 매달리어 새로운 대통령을 뽑았다.

그런데 이 “사람이 먼저다.”로 상징되는 정치 분위기가 역사 속의 한 사건과 묘하게 일치한다. 19세기 말 탐관오리들 횡포에 맞서 봉기한 동학교도들은 “사람이 곧 한울이다.”, “사람 모시는 것을 한울처럼 하라“ 라는 교리를 앞세워 현실 정치를 개혁하려 하였다. 어쩌면 촛불혁명을 이루어낸 오늘날 우리 모습은 과거 역사 속에 이미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2018년 3월 16일 여러 독립투사 후손들이 중심이 된 민족단체들과, 춘천 중도 유적지 보존회와 같은 역사 시민 단체들이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출발하여 동북아 역사 재단 앞까지 행진하면서 재단의 해체를 주장하였다. 그 중의 한 명인 손윤 의암 손병희 기념사업회 회장을 만났다. 손윤 회장은 미사협 공동의장을 맡고 있고 무엇보다 동학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 후손이다. 이제 손윤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동학 운동을 전라도 지역의 민란 혹은 양반 상민간의 계급투쟁 처럼 편협한 시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민족 대표 33인의 한명이었던 홍기주 선생의 경우 평안도에서 난을 일으킨 홍경래 후손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동학의 대접주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동학 초대 교주인 최제우 선생은 최치원을 배출했던 경주 최 씨 집안 양반 가문 출신입니다. 동학사상은 이 최치원 사상과도 연결이 됩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농민과 같은 특정 지역, 특정 계층의 봉기 이런 것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근거가 있는 이야기 들이다.

“최치원은 천부경 81자를 남겼습니다. 동학 창시자였던 최제우는 동학교도들의 주문을 만들 때에 천부경 사상을 반영했다고 봐야합니다.”

천부경은 대종교, 천도교와 같은 민족 종교에서 최치원이 남겼다고 믿고 있는 민족 경전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에 대한 관계를 숫자 3, 7, 9 등을 강조하여 표현되어 있다.

최치원이 천부경을 기록했다는 이야기를 천도교, 대종교 등의 민족 종교계에서는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보수적인 한국 강단 사학계에서는 역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펴낸 한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서는 천부경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1917년에 독립투사인 계연수가 암벽에 새겨진 것을 기록하여 대종교에 전했다는 이야기만 있다. 최치원이 기록했다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다른 의견도 있다.

홍산 문명을 우리 민족의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우실하 교수는 “삼수분화의 세계관”에서 신라 미추왕 보검이라고 알려진 신라시대의 칼에서 삼태극 안에 삼태극이 반복되는 문양을 통해서 천부경 사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우실하 교수의 주장이 맞는다면 천부경은 20세기 대종교 훨씬 이전에 신라인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이기도 하다.

▲ 경북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굴된 이른바 '황금보검'. 한국고유사상체계를 뜻하는 삼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최제우가 주문 삼칠자라고 표현한 동학사상 역시 세상의 근본을 사람으로 보고 있다. 믿지 못하는 기자에게 손윤 회장은 경주 최 부자 집 이야기를 하였다.

“경주 최 부자 집 이야기 있지요? 최 부자 집 가훈에 나오는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말라는 이야기나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이야기도 결국 사람이 곧 한울이다. 내지는 사람 섬기는 것을 한울 섬기듯 하라고 하는 동학 사상과 닿아 있습니다. 최치원, 경주 최부자집, 그리고 최제우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경주 최부자집은 최근에 박정희에게 영남대학을 강탈당한 후손이 언론에 나와 화제가 되었던 한국의 명문가 중의 하나이다. 손윤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동학 혁명은 정말 그 뿌리가 깊다. 그리고 이 혁명은 늘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다. 당나라 최고의 지식인 중의 한명이었던 최치원은 신라를 개혁하기 위해 시무 10조를 올렸다. 여기에도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있다고 이야기 한 천부경 사상이 반영이 되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최부자집 이야기, 동학혁명 그리고 최근 촛불혁명까지 모두 사회 개혁의 중심에 ‘사람’을 놓았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1960년의 4.19혁명,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한국인들은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사회 개혁을 부르짖었다. 사회 개혁을 이루어냈지만 그 아들 딸 들의 세대가 되어 다시 한 번 거리로 나와야 했다. 이 과정이 이번에 세 번째이다.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어쩌면 역사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한국인들의 사회 개혁은 언제나 미완의 개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촛불 혁명 현장, 광화문에서 2018년 3월 16일 동북아 역사 재단 해체를 주장하는 시위가 열렸다. 독립 유공자의 후손들과 여러 역사 단체가 광화문에서 동북아 역사재단까지 재단 해체를 주장하며 행진했다. 이어 동북아 역사재단 앞에서 재단의 해체를 소리 높여 외쳤다. 손윤 회장도 여러 참가자들과 함께 발언대에 올라섰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우리 역사를 바로 하라고 세웠는데, 이 놈들은 거꾸로 일본이 좋아하는 역사, 중국이 좋아하는 역사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삼국지를 50번 읽어 봤는데 조조가 경기도까지 왔다는 말이 없어요. 그런데 이 놈들은 동북아역사지도에 조조가 경기도까지 차지했다고 그려 놨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1년 전 중국의 시진핑은 트럼프와 정상회담 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했다. 시진핑이 이런 무례한 발언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손윤 회장이 지적한 것처럼, 매국 동북아 역사재단의 역사지도 사업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국인들 스스로가, 동북아 역사 재단을 통해 ‘한국은 중국 식민지로 시작했다’는 지도를 미국인들에게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시진핑이 거리낄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이 지도 사업은 여러 시민단체들과 도종환 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식 있는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폐기되었다. 그러나 최근 재단 이사장으로 새로 부임한 김도형 재단 이사장은 이 사업을 다시 재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날 많은 사람들이 동북아 역사 재단 앞에서 재단 해체를 소리 높여 외쳤지만 재단은 과거 10년 동안 그래왔듯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세무사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 평범한 이웃이기도 한 손윤 회장의 입장에서는 이날 동북아 역사재단 건물이 조선 총독부 건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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