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북한 일대로 그린 고려 천리장성은 바로 잡아야 한다.

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고려 천리장성은 각 지역에 축성하고 연결한 관성

천리관성은 당시 압록강, 압록강은 하북성 호타하

산서성 대동시 인근에 부여, 그 서쪽에 선비족 위치

▲ 고려 천리장성 위치도
▲ 고려 천리장성 위치도

-기고문 27-

[고려 천리장성 위치 확인]

- 고려 천리장성은 장성이 아니라 관성 내지는 관방이다.

-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는 한반도 서해안 압록강과 동해안 함흥만 사이가 아니다.

- 그 위치는 한반도 압록강 인근이 아니라 하북성 압록강인 호타하 인근이다.

고려 영역과 국경을 말해주는 고려 천리장성은 길게 이어진 장성이 아니다. 일정한 각 지역에 성을 축성한 후 이 성들을 연결하여 수비체제로 한 관성 내지는 관방이다.

고려 천리장성이 아닌 천리관성의 시작 위치는 고려 당시의 압록강이라는 점에서 서희의 강동 6주가 아닌 서희 8성의 위치와 일치한다.

시작 위치인 압록강 및 지명인 인주와 의주의 한반도로의 왜곡 이동에 따라서 고려 천리관성의 위치가 일제 식민 사학자들에 의하여 한반도로 정해졌다.

하지만 이들의 원래 위치는 당시 고려의 영역이자 국경으로 확인된다. 이는 하북성 압록강인 지금의 호타하 위치에서 동북쪽의 화주인 요령성 철령시로 확인된다.

이러한 고려 천리관성의 축소 및 위치 이동은 위의 압록강, 인주, 의주의 왜곡 이동 뿐만 아니라 이전의 소위 통일신라 시대 영역과 고려와 대치하였던 거란 및 요나라의 왜곡 이동에 의한다.

거란 및 요나라의 위치는 현재 요령성 북쪽의 내몽골자치구의 시라무렌강으로 설정한 채 인근을 그 위치로 하고 있다.

하지만 거란족은 선비족의 일파인 우문선비족의 분파이다. 선비는 당연히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 부여(夫餘)

夫餘在長城之北, 去玄菟千里, 南與高句麗, 東與挹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 方可二千里. 戶八萬

夫餘는 長城의 북쪽에 있는데, 玄菟에서 천 리 떨어져 있다. 남쪽은 高句驪와, 동쪽은 挹婁와, 서쪽은 鮮卑와 접해 있고, 북쪽에는 弱水가 있다. [국토의 면적은]방 2천 리가 되며, 戶數는 8만이다.

당시 장성의 북쪽인 지금의 산서성 대동시 인근에 있었던 부여의 서쪽에 있었다.

이곳은 지금의 산서성 태행산맥 인근이다.

이 선비에서 분파된 거란은 사서 기록상 황수 인근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황수하가 그 이름 그대로 선비의 위치인 산서성 삭주시 산음현에 지금도 위치하고 있다.

이 거란을 당나라 연종 시기에 안록산이 정벌한 사항에도 그 위치가 명백히 확인된다.

이곳은 틀림없는 지금의 태행산맥 인근이다.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이곳 동쪽 및 동북쪽에 있었던 발해를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그대로 요나라가 건국된 채 남쪽의 고려와 대치하였다.

이 대치한 곳이 요나라와 고려의 국경으로 삼은 것이 바로 고려 천리관성이다.

이러한 사항은 마찬가지로 한반도 북부로 왜곡 이동시킨 선비족으로써 이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세운 말갈의 후예인 여진의 생여진과 숙여진이다.

생여진과 숙여진의 원래 위치가 바로 서희 8성과 고려 천리관성이 시작되는 압록강인 하북성 호타하 지역이다.

■『고려사(高麗史)』列傳 권 제7 제신(諸臣) 서희

서희가 거란의 소손녕과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6주 지역을 확보하다

서희가 또 아뢰며 이르기를, “거란의 동경(東京)으로부터 우리 안북부(安北府)까지 수백 리 땅은 모두 생여진(生女眞)이 살던 곳인데, 광종(光宗)이 그것을 빼앗아 가주(嘉州)·송성(松城) 등의 성을 쌓았습니다.

■『요사(遼史)』「지리지」

2. 동경도(東京道)

1)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

내원성

내원성(來遠城) 본래 숙여진(熟女直) 지역으로, 통화 연간에 고려를 정벌할 때 연군이 용맹하다고 하여

두 지휘(指揮)를 설치하고 성을 쌓아 방어하였다. 군사 관련업무는 동경통군사에 속해있다.

또한 고려 천리관성의 끝 지점이 바로 고려 동계의 화주이다. 이곳은 나중에 몽골의 원나라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는 지역이다.

■『고려사(高麗史)』지 권제12 지리3 「동계」

안변도호부

화주

화주(和州)는 본래 고구려의 땅으로, 고종 때에 몽고(蒙古)에 편입되어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되었다. 공민왕 5년(1356)에 군사를 보내어 수복하고 화주목(和州牧)으로 하였다. 횡강(橫江)이 있다.

이와 같은 명백한 고려 천리장성이 아닌 천리관성의 실체에 의하여 우리 고대국가 고려의 역사가 바로 잡아져야 할 것이다.

* 전우성 :

-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ancient-history.youtubecreator/videos

- 저서: <우리 고대국가 위치를 찾다> 한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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