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는 국내외 1차사료를 바탕으로 다시 써야 한다.

 

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식민사학자들, 고려 동북9성 함경도로 날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는 두만강 넘어 공험진

명나라 초기에도, 공험진은 조선의 국경선으로

▲ 세종실록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등을 근거로 확인된 고려 국경.
▲ 세종실록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등을 근거로 확인된 고려 국경.

 

-기고문 28-

[고려 윤관 동북 9성 실체 확인]

- 고려 윤관 동북 9성은 단순한 정벌 사실이 아니다.

- 고려 윤관 동북 9성은 고려의 동북 국경이다.

- 그 위치는 한반도 두만강 북쪽 7백리 거리이다.

고려 윤관 동북 9성은 고려 역사 중 가장 왜곡이 밝혀진 사안이다.

그것은 명확한 동북 9성 위치인 공험진, 선춘령 위치 『세종실록』 기록 덕분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당시 고려가 단순히 잠깐 정벌하고 다시 내어 준 지역으로 간주한다.

그러면서 여전히 고려 영역은 서해안 압록강 어귀로부터 동해안 함흥만 일대로 하고 있다.

이 고려 영역은 윤관의 동북 9성에서 남쪽으로 700리 거리인 두만강보다 훨씬 더 남쪽이다.

<1> 그러나 여러 사서 기록상에는 분명히,

■『고려사(高麗史)』지 권제10 지리1 「지리 서문 」

西北, 自唐以來, 以鴨綠爲限, 而東北則以先春嶺爲界. 盖西北所至不及高句麗, 而東北過之.

고려의 북방 영토는 서북은 당나라 이후로 압록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서북은 고구려 지역에 못 미쳤으나 동북은 고구려 영토보다 더 북상했다.

고려의 동북 국경을 이곳 두만강 700리 북쪽의 선춘령, 공험진의 고려 윤관 동북 9성 위치로 하고 있다.

<2> 더군다나 이러한 고려 국경은 고려는 물론 이후 조선 시대까지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명나라에서도 이 공험진, 선춘령 이남을 고려에 이은 조선의 국경과 영역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세종실록84권, 세종21년3월6일 갑인 2번째기사 1439년

계품사 공조 참판 최치운에게 주본을 들려 북경에 가게 하다.

洪武二十一年間欽蒙太祖高皇帝聖旨, 準請公險鎭迤北還屬遼東, 公險鎭迤南至鐵嶺, 仍屬本國事因,

홍무 21년간에 태조 고황제의 성지(聖旨)를 받으니, ‘공험진(公險鎭) 이북은 도로 요동(遼東)에 부속시키고, 공험진 이남 철령(鐵嶺)까지는 그대로 본국에 소속하라.’는 사유를 허락하시매,

하지만 이마저도 현재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무슨 이유일까?

이는 모든 현재의 우리 역사학 논리와 체계를 일제 식민사학 논리를 해방 후 10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 그대로 추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사학의 제1의 논리는 바로 한반도 고착화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모든 우리 역사 논리가 이에 의한 관계로 이후 시기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한반도 안으로 한정시키고 있다.

<3> 이러한 연유로 단지 이 고려의 동북 국경이자 영역인 윤관의 동북 9성 뿐만 아니라 국경의 당연한 자연스러운 서쪽 국경 또한 왜곡시켰음은 당연하다.

이 고려의 서북 국경 역시 고려시기는 물론 적어도 조선 초기까지도 현재 역사에 의한 한반도 압록강 어귀가 아니라 지금의 요령성 요하 인근의 요령성 철령시 인근임이 확인된다.

■『고려사(高麗史)』권137 열전 권제50 우왕(禑王) 14년 2월

명에 철령위 설치의 중지를 요청하는 표문을 보내다. 1388년 2월 미상(음)

大明欲建鐵嶺衛, 禑遣密直提學朴宜中, 表請曰,

切照鐵嶺迆北, 歷文·高·和·定·咸等諸州, 以至公嶮鎭, 自來係是本國之地.

명(明)에서 철령위(鐵嶺衛)를 세우고자 하니, 우왕이 밀직제학(密直提學) 박의중(朴宜中)을 보내어 표문으로 청하기를,

철령(鐵嶺) 이북을 살펴보면, 역대로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함주(咸州)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公嶮鎭)에 이르니, 원래부터 본국의 땅이었습니다.

따라서 고려 윤관의 동북 9성은 단순히 그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1>과 같이 그 성격상 고려의 동북 국경과 영역이라는 사실

<2>와 같이 적어도 조선 초기까지도 조선의 국경, 영역이라는 사실

<3>과 같이 이는 서북 국경인 요령성 요하 인근임을 입증한다는 사실

등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명백한 고려의 국경 사실에 의하여 우리 고려국의 역사가 바로 잡아져야 할 것이다.

* 전우성 :

-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ancient-history.youtubecreator/videos

- 저서: <우리 고대국가 위치를 찾다> 한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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