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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조선침략은 1823년에 이론 완성

기사승인 2020.10.22  2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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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가 흥하려면 국민통합 철학사상이 있어야 한다.

글: 공관(북동중앙아시안연대 중앙위 의장)

 

다산 정약용의 조선침략은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일본관

이 시기 일본은 이미 조선침략 및 대동아 공영권 이론 완성

일본은 실사구시 학문에 따라 양명학까지 섭렵, 신도 내실화

한나라도 유학을 중심으로 중화주의이념 확립 부국강병 실현

저무는 미국보다 더 경계해할 것은 미국을 대신할 일본의 팽창

 

▲ 다산 정약용(서기1762~1836). 그는 <아방강역고> <목민심서> 등 수많은 저술로 리조선 후기의 지성으로 손 꼽힌다. 그러나 당시 그의 대일본관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아 

불편한 진실. 정약용의 “일본은 지금 근심할 것이 없다”라는 논거

어떤 사물과 정세를 바로 본다(正見)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국가 간의 정세는 더욱 그렇다. 국가 사이에는 겉으로는 우호적이고 안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매우 유동적인 경우가 많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국가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일정한 유형을 가지고 반복되는 것을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따라서 통찰 없는, 자기 앎을 최고로 여기는 지식인들의 지적 오만으로 사건/정세를 보면 그 실상과는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지식에는 무엇인가 기존의 가치관이 덧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약 200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의 일본관이 그랬다. 그는 「일본론 1.2」를 썼다. 그 1에,

“일본은 지금 걱정할 것이 없다. 내가 고학(古學) 선생이 지은 글과 오규 소라이와 다자이 륜다 등의 (유교)경의(經義)를 논한 바를 읽었다. 모두 찬연한 문장으로 쓰였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 일본은 근심할 것이 없음을 알겠다.… 대저 오랑캐를 방비하기가 어려운 것은 문(文)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지금 일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을 안다” (*1) 라고 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다산이 말한 문(文)은 유교 경전을 일컬으며, 그것을 안다는 것은 야만을 벗어나 곧 문명/문화화가 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을 침략하지 않을 것으로 단정한 것이다.

다산 선생의 생존시 일본에서는 주자학파와 영명학파, 그것을 비켜난 절충학파와 고경(古經)을 중시한 고학파가 있었다.

다산 선생은 유독 일본 훈고·고증의 문헌학자들의 논집들을 읽고 찬탄하면서, 일본은 한반도에 제2의 임진왜란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으로 추단하였다.

또한 다산 선생은 일본론 2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국력을 다해 두 번에 걸쳐 한반도를 침략하였으나, 화살 한 개도 돌려가지 못했고, 나라도 따라서 망했다. 백성들이 지금도 원망하고 있다. 그것은 전철을 밟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일본을 염려할 것이 없는 것의 하나이다.”(*2)라면서 4가지 이유를 더 들었다.

사무라이(武士)의 상무(尙武)적 풍토에서 유교 공·맹의 학문이 깊어지는 문화적 토양이 형성되면, 상무적 풍토는 변하여 타국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견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문명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다른 민족과 국가를 야만시하고 침략을 정당화한 경우는 우리의 인류사에 더 많았다. 서구가 자신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을 야만으로 규정짓고, 침략전쟁과 야만적 행위를 정당화했다.

어떤 사상·종교·문화가 다른 사회/국가에 전파된다고 해서 문명화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독단적인 가치관이다. 그래서 원지(圓智)를 얻는 경지가 필요하다.

다산 선생이 일본의 서책을 입수해 보고 ‘일본론’을 지을 때는 지금처럼 일본의 사정을 그런대로 통합적으로 알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고 치더라도, 선생의 일본관은 매우 편협됨으로써 잘못되었다.

▲사또 노부히로(佐藤信淵, 서기1769~1850). 다산 정약용과 동시대를 산 그는 서기1823년 벌써 일제의 제국주의를 예견한 대동아공영권을 담은 『우내혼동비책, 宇&#20869;混同秘策』 를 썼다. 이외에 일본이 향후 나아갈 길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수많은 책을 썼다. 일본 우기타현 우고마치에는 그를 기리는 모임도 창설됐고 현지에 그의 신사가 있으며 신으로 추앙받아 입학시험을 앞둔 부모들의 기도 대상이 되고 있다. 자료 출처: https://readyfor.jp/projects/satonobuhiro

일본은 1600년대의 같은 시기에 주자학과 더불어 양명학이 도입되어 왕성하게 논쟁하고 있었다. 왕양명(王陽明)이 살아 있을 때(1513년, 42세) 일본 불교 임제종 료안 케이고(了庵桂悟 1425~1514)는 승려 신분으로 일본의 정사(遺明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건너가 직접 만난 적도 있었다.

사실 일본 지식인들이 유교 경전을 논한 차원이 매우 깊고 찬연함으로써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약용 선생의 유교적 문명/문화론은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것이다. 공자와 맹자가 평화론자인지는 나는 유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중국 한나라 무제 때,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백가를 파출하고, ‘춘추공양학(春秋公羊學)’을 중심으로 한 유교를 국교화하여 사상통일을 했다.(罷黜百家, 獨尊儒術)

이는 공자로부터 시작된 중화제일주의 사상으로서, 한 고조 유방 때부터 맹약한 북방 흉노에게 바치는 조공과 황녀를 보내는 것을 부정하는 존왕양이의 정치사상이었다.(*3)

한나라는 이 사상으로 국론을 통일/무장하고 흉노와 긴 전쟁에 돌입했다. ‘춘추공양학’의 정치 이념은 2500년 이상을 이어져 오는, 지금도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정치이념이다.

일본은 이러한 유교의 사상을 1600년대에 그들의 『고사기』나 『일본서기』에서 끌어내어 유교의 일본 신도 황국화 논리로 어느 정도 완성할 때였다.

하지만 다산 선생이 유교경전의 논서와 고증학으로 예학의 전형을 찾으려고 했을 때는, 일본의 유학은 일본제일주의인 신도에 의한 황국사관으로 배태/발아되어 성숙되고 있었다.

다산 선생과 동시대인 히라타 아스타네(平田篤胤)에 이르러서는 복고신도(復古神道)가 완성 단계에 있었다.

그에 따라 도쿠가와 막부 말기의 혼란상에다 서구의 입아(入亞)로 일본의 국정 개혁과 팽장정책이 창안되고 있었다. 그러한 맥락이 이어져 여러 가지 부국강병책이 연구되고 퍼져나갔다.

메이지 일본의 대륙 팽창정책을 설계한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에게 사쿠마 죠잔(佐久間象山)과 더불어 큰 영향을 준 농정학자이자 경세가인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 1769~1850)가 있었다.

정약용과는 불과 일곱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그는 후대의 대동아공영권의 모본인 『우내혼동비책, 宇内混同秘策』)을 1823년에 썼다.

그 내용은 일본지상주의 입장에서 세계를 속령으로 두는 혼동경략混同経略의 방도를 언급한 것이다.

일본 전국을 14개 성의 행정구역으로 통일하고, 그 국력을 바탕으로 만주(중국 동북지구)· 몽골· 지나(중국 본토)· 조선· 남방제도에 대한 침략정책을 내용으로 했다.

도쿠가와 치정하에서 통일국가를 그린 희유의 책이며, 또한 근대 일본의 대외팽창책을 선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논서이다. (*4)

다산 선생이 일본은 “근심할 것이 없다”고 했을 때, 일본은 내정개혁과 한반도 점령을 비롯한 팽창정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 후 100년 후 그 책략은 실행되었다. “일본군국주의 사상은 왜 음혼(陰魂)이 되어 흩어지지 않고, 어떤 시기에는 감쳐지고, 어떤 시기가 되면 나타나는가(時隱時現) ?”(*5) 섬족 일본인의 도서(島嶼)폐쇄성과 개방해양성의 이중혼합성이 교차 변주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팽창정책은 오늘날 중국 굴기를 빌미로 이전과 다른 언설과 전략으로 다시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일본 정한론의 뿌리는 길고 깊다.”(*6)

지금 보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일본론’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현재도 일본의 본의를 모르고 한·일 연대론이나, 동맹론을 펼치는 얼빠진 한국 지식인들과 경세가들이 많다.

미국을 볼 것이 아니라, 그 미국을 조정하는 일본을 잘 살펴봐야 한다. 어차피 미국은 국력의 한계로 한반도에서 물러나 서태평양을 일본이 맡도록 하다가, 우리가 하기에 따라 다시 한반도와 손잡을 것이다. 이렇게 유동하는 국세에 우리는 일본의 손아귀에 다시 들어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참고자료

(*이토 진사이(*古學, 伊藤 仁斎、1627~1705, 語義學)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 文献学者 古文辭學 제창)

(*다자이 륜다(太宰 春台,1680~1747, 江戸時代中期의 儒学者・経世家)

(*1:『與猶堂全書』 第一集 詩文集第十二卷○文集 > 論 日本論 1. (日本今無憂也。余讀其所謂古學先生 … 等所論經義。皆燦然以文。夫夷狄之所以難禦者以無文也. 由是知日本今無憂也。)

http://db.itkc.or.kr/dir/item?itemId=MO...

(*2: 상동, 日本論 2.

http://db.itkc.or.kr/dir/item?itemId=MO...

(*3: 『公羊學與漢代社會』 宋艶萍, 北京, 学苑出版社, 2010.

(*4: 出典:[八木清治] 小学館 日本大百科全書)

(*5:『“大東亞共榮圈”源流』 林慶元 楊齊福 著 社會科學文獻出版社 北京 2006.11.

(6:『征韓論의 背景과 影響』 李炫熙, 大旺社, 1986.

2020.10.16. 인릉산 아래 누실에서, 공관.

 

공관 객원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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