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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침략은 야마구치현 한 촌의 학당에서 시작

기사승인 2020.10.14  21: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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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를 피로 물들인 명치유신 주역을 숭배하는 세력이 일본 자민당이다.

글: 신종근(의사, 역사연구가)

 

죠수번 곧 현재 야마구치의 한 작은 학당, 송하촌숙을 연 요시다쇼인

조선침략의 선봉에 선 이토오히로부미, 야마카타 아리토모가 여기 출신

30세도 안된 요시다쇼인, 조선, 만주, 필리핀, 대만 침략 꿈 결국 이루어

 

▲현재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에 보존돼 있는 요시다쇼인의 송하촌숙. 조선을 침략한 요시다쇼인의 제자들이 송하촌숙에 걸려 있다. 설명도 해 놨다.

<오사카의 여인> 열네번째 이야기

조슈의 번성(藩城, 수도) - 하기(萩)

하기(萩)는 도시 전체가 '메이지유신의 거리'라고 하여도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니다. 시내의 몇 집을 건널 때마다 또는 한 골목을 건너 다음 골목에 이르면 반드시 메이지유신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증오의 미학 - 요시다 쇼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근대일본을 일으킨 사상가로서 존경하는 한국인들이 꽤 많이 있다. 그러나 실제 쇼인과 그 제자들의 주장이 무엇이었는지는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신사(神社)를 걸어가면서 이쓰코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요시다 쇼인은 현대일본의 철학을 완성한 사람입니다. 현재 일본의 정신적인 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메이지시대의 청사진을 만든 선각자 요시다 쇼인은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신위(神位) 제1호로 모셔져 있을 만큼 일본인들이 숭앙하는 인물이지요. 한국인을 포함한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역대 일본 총리들이 야스쿠니에 가서 참배할 때 실상 누구에게 절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토 히로부미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주 잘 안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나간다면 에도막부(江戶幕府)나 메이지유신 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역사학자가 아니면서도 이런 모두를 척척도사처럼 꿰뚫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이들의 지식은 대부분 일본을 근거없이 친근하게 다룬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선침략의 산실 - 쇼카손주쿠(松下村塾)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은 1853년 미국 페리의 흑선 내항 때 밀항하려다 실패하고 자수하여 에도(江戶, 도쿄)의 감옥에 반 년정도 갇혔다가 송환되어 조슈(현 야마구치 현)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에서 죄수들과 간수들에게 맹자 강의와 자신의 일본여행과 유람기를 들려주어 큰 인기를 끌게 되었으며, 1856년 감옥에서 풀려나서 1857년 조슈 하기(萩)에 쇼카손주쿠(松下村塾, 개인서당)를 열고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그런데 쇼인의 문하들을 보면 모두가 피로서 메이지유신의 길을 닦은 인물들이며, 여기에서 횡사하지 않고 살아남았던 인물들은 조선을 침략한 주모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쇼인은 1858년 존왕양이(尊王攘夷, 천황을 세우고 외국을 배척)를 주창하다 막부(幕府) 고관의 암살음모에 연루되어(안세이 대옥) 감옥에 갇혔다가 1859년 사형판결을 받고 참수되었다. 그는 죽음에 임하여서도 '야마토 타마시(大和魂, 일본혼)'를 외쳤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 앞부분에서 일본 고대사에 대해 말한 것처럼, 쇼인이 말하는 '야마토 타마시(大和魂, 일본혼)'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고대 일본열도에는 야마토(大和) 왕국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설사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쇼인이 알던 대단한 국가가 아니고, 2세기 무렵 규슈에 있었던 극히 미미한 규모로 백여 개국의 하나였을 수도 있다.

쇼인 사상의 근거가 되는 야마토(大和) 왕국은 에도시대 중엽에 국수주의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가 대단한 국가인 것처럼 창작해낸 것일 뿐이다.

죽고나서 쇼인(吉田松陰)의 영향은 메이지유신의 지사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일본 극우주의자들에게 그 사상적 근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가 조슈(현 야마구치 현)로 이송된 뒤 감옥에서 제자들을 훈육하면서 남긴 다음의 두 마디가 그의 핵심적인 사상으로 그가 남긴 '유수록'에 언급되어 있다.

"러시아나 미국 등의 강국과는 신의를 돈독히 하여 우호관계를 맺어 국력을 기른 연후에,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조선과 만주 그리고 중국을 점령하여, 강국과의 교역에서 잃은 것을 약자에서 착취하여 메우는 것이 상책이다.

류큐(流球, 오키나와)와 조선을 정벌하여 북으로는 만주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타이완과 필리핀 루손 일대의 섬들을 노획하여 신공황후(神功皇后)가 다하지 못했던 바를 이룩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유지를 이어야 한다"

일견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러한 주장들이 일본의 근세를 계속 지배해왔다. 조선은 약한 나라이니 기회를 보아 다시 약탈하자는 선동에 불과한 쇼인(吉田松陰)의 사상을 대단한 것으로 치부하여 쇼인을 야스쿠니 신사에 제1호의 신(神)으로 모신 것은, 아직도 조선과 아시아에 대한 침략의 정서를 살려 나가겠다는 일본인들의 의사 표시임이 분명하다.

출처: <오사카의 여인> 곽 경, 어문학사, 2015

신종근 객원기자 mukto@naver.com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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