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대륙 동이족의 역사를 복원해야 중국 역사침략 뿌리 뽑힌다.

 

글: 이덕일(신한대 대학원교수)

 

 

서언왕의 동이족 나라는 강소성 회수 사수 통치

동이족 서언왕이 주나라를 토벌하자 항복한 목왕

초나라에게 멸망했다고 하나 3백년차이나 안 맞아

동이족 난생개국신화를 서언왕 서국에서도 나타나

 

▲ 중국 강소성에 있는 서언왕묘 기념당에는 서언왕의 상을 모셔놓고 있다. 서언왕은 동이족의 상징인 난생설화를 갖고 있다. 좌우에 새가 있고 뒤에 나무와 함께 새들이 있다. 한웅천왕은 조이족으로 밝혀졌다. 소호금천씨도 새를 숭상하는 조이족이다. 알을 뜻하는 난은 통상 새알을 뜻한다. 천손족을 상징한다.출처: https://kknews.cc/history/2nxr23e.html

서언왕(徐偃王)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사마천의 《사기》 <진본기>에 보면 서언왕의 이름이 살짝 언급되고 있습니다.

"서언왕徐偃王이 난을 일으키자 조보造父가 목왕의 수레를 몰았는데 먼길을 쉬지 않고 몰아 주周로 돌아왔으니 하루에 천 리를 달려서 난을 구원했다"는 대목입니다. 오늘은 이 서언왕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편찬한 《신주사기》 <진본기>에 따르면, 서언왕徐偃王은 영성嬴姓으로 서씨徐氏이고, 이름이 언偃, 자字 가 자유子孺로서 서국徐國의 32대 군주입니다.

서국은 동이족 국가인데 서언왕은 현 강소성江蘇省 휴영睢寧현 고비진古邳鎭에 있던 하비下邳에 도읍하고 회수淮水와 사수泗水일대를 통치했습니다.

주목왕穆王 말년에 서언왕은 뛰어난 정치력과 인덕으로 36개 나라의 조공을 받았습니다. 서언왕이 ‘난을 일으켰다[作亂]’는 것은 <오제본기>에서 치우蚩尤가 ‘난을 일으켰다’는 서술처럼 동이 임금이 중원 왕조를 쳤을 때 쓰는 중화사관식 표현입니다.

서언왕은 서徐나라 왕으로 성이 언偃인데, 제요 아들이며 신하던 고요皐陶의 후손이므로 성이 언이 된 것입니다. 서언왕에 대해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 서이徐夷가 참람하게 왕을 칭하며 구이九夷를 거느리고 종주 宗周(주나라)를 쳐서 황하 상류까지 이르다.

목왕이 그 세력이 널리 떨칠 것을 두려워하여 동방 제후들을 분리시켜 서언왕에게 명하여 다스리게 했다.

언왕은 황지 동쪽에 살았는데 땅이 오백리였으며 인의를 행하니 육로로 조공하는 나라가 서른여섯 나라나 되었다.

주목왕이 뒤에 적기赤驥・녹이騄耳 등의 말을 얻어 조보造父에게 그 말을 몰고 초楚나라에 알려 서나라를 치게 했는데 하루 만에 초에 도착했다. 이에 초문 왕文王이 큰 군사를 일으켜 서나라를 멸망시켰다.

언왕이 어질기만 하고 권도權道를 사용하지 않아서 차마 백성을 데리고 싸우지 못해 패하기에 이르렀다.

북쪽 팽성彭城(현 강소성 서주) 무원현武原縣 동산 아래로 달아나니 따라간 백성이 만여 명이나 되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그 산 이름을 서산徐山이라 하였다.”

그런데 주목왕의 요청에 의해 초문왕이 서국을 멸망시켰다는 이 기록은 연대가 맞지 않습니다. 주목왕은 서기전 1001~서기전 946년의 인물이고, 초문왕은 서기전 689~서기전 677년의 인물이라서 300년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진晉의 장화張華가 편찬한 《박물지》 <이문異聞> 편에는 서언왕의 출생이 난생사화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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