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기득권 세력을 극복하고 진정한 진보개혁세력을 세울 때 양당 기득권에 이용당하지 않는다.

글: 한설(국립순천향대학 초빙교수, 예비역 준장)

 

사회의주의 성향, 센더스 인기는 양극화 미국이 위기라는 뜻

미국 공화당, 민주당은 태생적으로 부르조아 자본가 계급 정당

한국 민주, 자한당, 정의당 모두 자본가, 노동기득권 옹호정당

한국도 미국처럼 사회적 약자 위하는 기득권 정당은 존재안해

 

▲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 버니 센더스. 센더스가 서기2015. 미국 뉴헴프셔주의 기자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자료: https://www.bostonglobe.com/metro/2019/03/08/bernie-sanders-democrat-complicated/EqijixWUCUXz4dOxcMgF1N/story.html

미국 한국 찍고 다시 호남으로

미국 대선에 서로 정치적 경향을 달리하는 소로스와 코크가 합쳐서 퀸시 연구소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문제는 이들이 양극화된 미국정치를 통합한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그들이 말하는 양극화의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양극화란 빈부격차를 의미한다.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을 놓고 분배냐 성장이냐로 정치적 주장이 나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태생적으로 모두 부르주아 정당이다. 북부의 산업자본가와 남부의 농업자본가를 대표한 것이 공화당과 민주당이다.

그 이후에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치적 성격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둘 다 부르주아 정당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미국에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은 없다.

소로스와 코크가 말하는 양극화란 빈부격차에서 비롯된 정치적 주장의 양극화가 아니라, 기존의 정치 경제적 상류층 사이의 견해차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은 진보적이라고 하지만 그 성격상 진보와 거리가 멀다. 오바마와 힐러리는 미국 상류 자본가층의 한 분파를 대표할 뿐이다. 미국에는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샌더스가 오랫동안 무소속으로 활동했던 이유다. 무소속이던 샌더스가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출마한 것은 대중의 힘을 얻기 위해서일 뿐이다.

미국의 정치지형과 한국의 정치지형도 비슷하다.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기득권을 대표한다. 지역적으로 보면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의 기득권, 더불어민주당은 부산경남과 호남일부의 기득권을 대표한다.

사회적 그룹별로 나누면 자유한국당은 자본가와 법조인등 사회엘리뜨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더불어민주당도 자유한국당과 마찬가지로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리고 이미 기득권이된 86기득권 세대의 이익을 대표한다.

따라서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양극화 현상은 계급적 갈등과 무관한 기득권층끼리의 이권싸움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같은 쪽에 있다. 그러나 정의당도 이미 기득권화된 부자노동자의 당일 뿐이다. 연봉 1억씩 받는 노동자의 정당은 부르조아 정당이다.

우리나라에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은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것이다. 정의당이 이들의 이익을 위하는 척하고 있으나 그것은 흉내내기에 불과하다.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확보하려면 기존 부자 노동자들의 몫을 떼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진짜 가난한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이렇게 장황하게 서론을 이야기한 것은 최근 안철수와 손학규 등이 주장하는 중도정치라는 것이 소로스와 코크가 말하는 중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읽혀지기 때문이다.

이 두사람이 말하는 중도란 이미 기득권화되어 버렸으나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간의 중도를 의미한다. 즉 기득권끼리 이해관계를 잘 조정해서 조용하게 이익을 분배하자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사회적 약자가 낄 자리는 없다. 즉 그들만의 잔치인 것이다.

호남이 정신차려야 한다고 그동안 쓴소리를 한 것도 그런이유다. 만일 호남이 손학규의 중도세력에 포섭이 되면 진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적 기반이 완전하게 무너져 버린다.

그럼 진짜 미국처럼 되어 버릴 것이다. 아마 손학규는 호남의 진보적 정치지형을 무너뜨리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정당은 없다. 그나마 호남이 그런 역할을 해왔다. 과거 호남은 안철수를 내세워 진보적 역량을 결집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그러나 안철수는 태생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이후 민주당을 전략적으로 선택했으나 그 이후 전개되는 과정의 결과는 현재의 모습이다.

그동안 호남은 많은 전략적 선택을 했다. 노무현과 안철수 그리고 문재인이었다. 모두 실패했다. 실패한 이유는 자기자식은 내버려두고 양자를 들여서 덕을 보려 했기 때문이다.

지금 총선에서 찍을 정당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된 책임의 상당부분은 전략적 선택으로 일관한 호남에 있는 것이다.

호남이 진보적 역할을 계속하려면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남의 동네에 기웃거리지 말고 자기동네에서 제대로 된 사람들을 먼저 키워야 하는 법이다.

자기집안 자기동네 사람들 제대로 키우지 않은 결과가 지금 호남의 정치인들이다. 그들중에서 진보적이며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정치인이 어디 있는가?

지금 호남정치인중에서 개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설사 있다하더라도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울며겨자먹기로 다 망해가는 더불어 민주당에 목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호남이 진정한 진보적 개혁세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우리나라도 서로서로 해먹는 남미와 같은 상황으로 가지말라는 보장이 없다.

개인이건 사회건 국가건 항상 긴장이 필요하다. 내마음 내키는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할수 있는 만큼 해먹는다.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해왔다. 인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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