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과 조선이 역사라는 사실을 온 국민이 새겨야 북한과 이질감을 극복할 수 있다.

 

글: 류돈하(자유기고가)

 

서기 15세기에 어린이용 국사책 동몽선습

여기에도 단군을 분명한 역사로 가르치고 있어

임진왜란 직전 일본사신으로 간 학봉 김성일도

단군이 우리역사임을 일본승려에게 가르쳐 줘

지금 우리는 개천절 주인공 한웅은 고사하고

단군조차도 신화로 치부 중국인 위만조선을 역사화

 

▲서기1883년 판 단군영정. 이 단군영정은 채색 단군영정 그리기 전에 밑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이 영정에는 머리뒤에 광채가 있다는 표시를 마치 햇살처럼 가는 줄로 발산하는 모양으로 새겨놓고 있다. 이것을 광배, 또 후광이라고 하는데 통상 인간을 뛰어 넘은 존재를 나타낸다. <삼국사기>에 평양을 선인왕검의 택이라고 나온다. 여기서 학계에서는 '선인仙人'을 단군왕검으로 인식하고 있다. 불교의 부처, 기독교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로 평가된다. <삼국유사> 고조선기에는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신과 같은 존재인데 이를 후광으로 나타낸 것으로 본다(편집인 말). 자료: 단군문화포럼 제공

<삼국사기 신라본기>

先是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 爲六村

(선시조선유민 분거산곡지간 위육촌)

이보다 먼저 조선朝鮮의 유민이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촌락을 이루었다.

<삼국유사 기이 제1 >

시유일웅일호 동혈이거 상기우신웅 원화위인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일웅일호 동혈이거 상기우신웅 원화위인)

당시 한 곰과 한 호랑이가 같은 굴에 살면서 환웅에게 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원하였다.

<동몽선습 총론>

東方 初無君長 有神人 降于太白山檀木下 國人 立以爲君 與堯竝立 國號朝鮮 是爲檀君

(동방 초무군장 유신인 강우태백산단목하 국인 입이위군 여요병립 국호조선 시위단군)

동방에 처음에는 군장[임금]이 없었는데 신인이 있어 태백산[백두산] 단목아래에 내려와 나라 사람들이 이를 임금으로 세웠다.

그리하여 중국 당요[요임금]와 같은 때에 즉위하여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

이가 바로 단군이다.

대저 우리나라사람이라면 대개 어릴적부터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니까 곰의 자손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장성하게 되면 그제서야 곰이 사람이 되어서 단군을 낳았다는 이른바 '단군신화'를 좀 더 학문적으로 승화시킨다.

즉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를 문자 그대로 곰과 호랑이로 보지 않고 곰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곰부족과 호랑이부족으로 해석하여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군신화의 등장인물인 단군은'실존했던 한민족의 시조'로 보고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신화의 곰이야기'는 그저 전설따라 삼만리로 분류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맹목적 신앙으로 일관하는 일부 기독교인들과 일부 식자들은 단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되레 단군신화자체를 '얼토당토않는 사실'로 몰아 부치면서 단군신화의 등장인물을 모두 신화적 가상인물로 여기고 있다.

단군신화를 제대로 해석 한번 하지 않고 단군신화를 문장 그대로 허구와 거짓으로 만드는 그들의 베짱은 충분히 개탄하고도 남을 일이다.

종왜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한 강단의 사학자들은 단군조선의 사료가 부족하고 그 사료를 사실로 뒷받침할 수 있는 관련유물이 적다는 이유로 우리 역사의 기원을 위만조선을 정설로 채택하여 단군과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 기원을 2600년으로 비정하면서 우리나라를 병탄 한 후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여 우리역사를 단 36권으로 새롭게 정리하고는 우리 역사를 반만년 유구한 역사가 아닌 2300년역사로 탈바꿈시켜놓았다.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친구 연왕 노관盧綰의 부장 위만이 무리 천여명을 이끌고 단군조선의 제후국 기자조선에 의탁해 단군조선의 일부분을 탈취한 것이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유래이다.

위만조선은 단군조선 변방의 일부를 차지한 나라일 뿐이지, 단군조선 전체를 집어삼켜 단군조선을 대체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위만조선론衛滿朝鮮論의 실체이다.

중국사서 중 단군조선이 최초로 등장하는 사서는 관자 管子로서 BC 7세기 경에 이미 단군조선이 건재한다는 점은 우리역사의 기원이 2300년이라는 학설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위만조선이 우리 역사의 첫머리라는 것을 우리 사학계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 역시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일단은 단군신화에 대한 생각과 사고를 다시한번 정립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단군신화라는 것이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것을 따져보고 파헤쳐 보아 민족의 시조라는 단군을 어떻게 봐야 하며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를 새롭게 조명해봐야 한다.

그런 즉 단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보자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신화는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실제, 삼국유사에 보면 일웅일호[一熊一虎=한마리의 곰과 한마리의 호랑이]로 기록되어 있다.

<이 일웅일호라는 구절에서 단군에 대한 모든 오해와 왜곡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단군신화라는 것이 사실은 삼국유사에만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단군신화의 내용은 우리민족고대사를 담은 사서인 '삼성기'와 '태백일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삼성기와 태백일사는 하나의 책으로 합본되어 환단고기에 실려 있다.

환단고기는 안타깝게도 긴 시간동안 진.위서 논쟁에 시달리고 있는 서적이면서도 짜집기한 흔적도 있는 사서이다.

민족사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석주 이상룡의 대동역사,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북애자의 규원사화와 대동소이한 부분이 많은 편이다.

환단고기에 합본된 삼성기와 태백일사의 단군신화내용도 삼국유사와 더불어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삼성기와 태백일사에서는 삼국유사에서 나오는 '일웅일호'이란 구절은 눈을 씻고 봐도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삼성기와 태백일사는 일웅일호를 무엇으로 대체했는가.

바로 신계지민[神戒之民]과 천계지민[天戒之民]으로 기술하고 있다.

즉 삼성기와 태백일사의 두 사서는 삼국유사와는 달리 신계[천계]의 백성으로 기술된 것이다.

이것은 즉 그 당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곰부족과 호랑이부족이 선진적인 문명과 신교문화의 정통성을 가진 환웅의 무리에게 그 일원[백성]으로 받아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삼국유사와는 아주 판이하게 다르다.

삼국유사는 단지 일웅일호로 해서 끝까지 허구적 신화를 풍기는 반면 삼성기와 태백일사는 잘만 해석하면 논리에도 근접하고 역사에 일치한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일연스님이 귀찮은 듯이 아주 간단히 쓴 일웅일호의 구절 때문에 그 곳에서 모든 곡해와 왜곡이 뒤따르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우리민족의 입장에서 쓴 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불교적 신화사관에 기초하여 기술한 일연의 의도가 뚜렷하다.

그러니 역사적인 시각에 근접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색체를 띄고 기술한 것이기에 종교적 시각에 근접하다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삼국유사는 13세기에 집필된 것으로서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충한 것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역사적인 면보다는 불교교리적인 면이 더 많다.

그런데 이것이 천년이 넘도록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모든 일원들의 머리에 '우리는 곰의 자손'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박히는 부작용으로 변해 버렸다.

우리는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

더욱이 웃지 못할일은 삼국유사의 부작용으로 인해 연세대교수를 지낸 기독교인 김동길 같은 교수는 단군신화의 환웅을 '동물과 성관계를 즐기는 성적으로 타락한 인간'으로 자의自意 해석한 점이다.

우리의 역사의 뿌리가 얼마나 심한 상처를 받고 단절되었으면 그릇된 역사관념을 가지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조상과 후손의 관계마저 흔들리게 되었으니 어찌 통탄치 않으리요.

무릇 모든 일은 사필귀정이 아니겠는가.

잊혀지고 철저하게 잘라져 나간 역사는 반드시 그 실체와 정체를 찾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필귀정과 원형이정의 무서움을 모르는 어리석은 기독교신앙인들과 친일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한 일부 식자들은 지금까지도 단군신화를 신화로 치부할 뿐이다.

그들은 역사의 심판이 대저 어떠한 것인지를 잘 모를 것이다.

보통 신화라는 것은 그 배후에 반드시 역사적 사실을 감추고 있다.

2018년 9월 20일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더불어 우리민족의 시원지이자 영산인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이는 남북분단 이래 최초의 일이다.

인공위성 사진으로 백두산 천지를 살펴보면 영락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곰 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것을 단군신화에 함축적으로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단군신화 외에 추모탄생신화, 박혁거세탄생신화, 김알지탄생신화, 김수로왕탄생신화의 이야기 뒷면에도 각 시조들의 기원과 출신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담겨져 있다.

단군신화의 내용 역시 그 배후에 선진적인 문명을 가진 환웅과 후진적 문명을 가진 부족의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오랫동안 전승되어져 내려오는 신화는 필히 그 내용 안에서 역사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 좀 더 심도 있게 연구해봐야 한다.

그것은 아마 오늘날 역사를 배운다는 사학자들과 역사를 사랑한다는 역사애호가들, 아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어쩌면 당연한 몫이자 의무일 것이다.

아울러 우리민족의 고대사를 되찾고 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모두 '단군의 올바른 인식'에 달려 있다.

단군을 그냥 단순히 개인의 성명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최고통치자의 칭호로 볼 것인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고대사연구의 방향의 이정표가 정해질 것이다.

이미 단군이 개인의 고유명사가 아닌 한 왕조의 통치자의 호칭이라는 것은 단기고사, 단군세기, 규원사화 등 여러 사서에서 말해 주고 있다.

삼국유사에 적힌 단군의 수명1908세는 그것을 푸는 실마리이자 단군조선비밀의 열쇠이기도 하다.

이 단군 수명 1908세에 대해서는 여암 신경준[旅菴 申景濬:1712~1781]선생의 [여암전서旅菴全書]와 서거정[徐居正:1420~1488] 선생의 [동국통감]에 분명히 '한 개인의 수명이 아니라 세세로 전해져 내려온 왕조의 역년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또 조선숙종 때 의정부 우의정을 지낸 미수 허목[眉叟 許穆:1595~1682]의 기언[記言]에는 단군조선의 역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져 있다.

[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건 도당씨<중국의 요임금>25년 무진년부터 순임금, 하나라를 지나 상<은나라> 무정8년까지 이르렀는데, 1048년이다.]

단군은 신기한 신화의 모습을 가진 허황된 인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했던 우리역사의 근원이자 첫머리라 할 수 있다.

또한 여암전서와 동국통감에서 밝히듯이 단군이란 존재는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며 고조선 최고통치자의 호칭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소요당 박세무(消遙堂 朴世茂: 1487~1564)는 학문을 처음 접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한문입문서인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집필하였다.

동몽선습 총론에서는 당시 주자 성리학이 팽배하던 사대주의의 영향으로 중국의 역사를 처음 기술하고 그 다음에 우리 조선의 역사를 간단히 기술하고 있다.

동몽선습 총론에서 말하는 우리의 역사는 사실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인정하는 왜곡을 저지르고 있으나 단군과 단군조선을 언급하며 우리 역사의 첫머리로 기술한 점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단군과 단군조선은 우리의 머리역사에 해당된다.

조선 태조실록에도 조선의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이라 하였고 주원장이 조선국왕을 책봉할때 조선 측에 전달한 어제시(御製詩)에 단군(檀君)이 가신 지 오래이니 몇 번이나 경장(更張)하였던가라는 구절을 통해 단군을 언급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은 일본에 조선통신사를 파견하였다.

이때 일본승려 종진(宗陳)이 통신사 부사 학봉 김성일에게 중국 대명일통지에 기록된 조선의 역사를 논하며 물어보았다.

조선의 첫 역사는 기자조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자 학봉은 종진(宗陳)에게 중국 제요도당(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단군이 조선을 세웠다는 사실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왜곡이라는 도끼는 우리의 뿌리를 절단하여 우리 역사가 처절히 쓰러졌다.

쓰러진 우리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

또 일부 특정집단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는 바로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현시대의 우리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단기 4352년 10월 개천절에 환인, 환웅, 단군 국조삼성의 덕을 기리며 彦庵(언함)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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