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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백마청란신화, 거란시조신화와 비슷

기사승인 2019.09.10  18: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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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영부인의 용(龍)신화는 신라 여왕을 상징한다.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
⑭ 신라 건국시조 신화체계의 비밀

고대 아시아 국가의 시조신화는 크게 두 가지 계통으로 나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북방 유목민 계통의 ‘천손신화’와 알아서 태어난 남방 농경민 계통의 ‘난생신화’이다. 천손신화 주인공들은 하늘, 산, 나무 등에서 땅으로 내려오며, 난생신화 주인공들은 알, 박, 궤짝, 배 등에서 나온다. 매개체는 말, 용, 닭, 등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유목민 계통의 지배층이 농경민 계통의 피지배층과 결합하며 적절한 신화체계가 만들어진다.

 

▲ 경주 대릉원 천마총 장니에 새겨진 백마. 백마는 시조 박혁거세의 상징이다.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박혁거세 백마청란신화, 거란의 시조신화와 유사 

박혁거세는 말(馬)을 매개체로 한 난생신화이다. [삼국사기]는 말(馬), 알(卵) 등으로 단순화 하나, [삼국유사]는 백마(白馬), 청란(靑卵-또는 紫卵)으로 좀 더 구체적이다. ‘백마청란’신화이다. 백마는 동서양 공히 고대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신성한 동물이다. 주로 중요한 인물의 탄생에 관여하며,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박혁거세 역시 백마의 출현으로 탄생의 서상(瑞相-상서로운 조짐)이 극대화된다.  

그런데 박혁거세의 탄생신화에 등장하는 백마가 거란족의 시조신화에도 나온다. 옛날 백마를 타고 온 신인(神人)과 청우(靑牛-퍼렁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온 천녀(天女)가 목멱산에서 만나 부부가 되어 8명의 아들을 낳는다.(#1[요사]) 거란족의 시조와 8부락의 기원을 설명한 ‘백마청우’신화이다. 박혁거세 시조신화와 비교하면 골격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백마가 공통으로 등장한다.

특히 거란족이 세운 요(遼, 916~1125)에는 국구장(國舅帳)제도가 있다. 왕의 장인 중에 세력가를 왕에 준하여 대우해주는 제도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가 초기신라 때부터 등장하는 갈문왕(葛文王)제도이다. 다만 신라의 갈문왕제도는 왕의 장인 뿐 아니라 왕의 아버지까지 점차적으로 확대된다. 

학계는 두 시조신화의 유사성과 제도의 동질성 등을 크게 평가하지 않는다. 혈연적 연관성보다 문화적 친연성에 방점을 둔다. 신라 화랑의 기원과 계보를 정리한 [위화진경](남당필사본)에 박혁거세의 혈통이 나온다. 어머니는 (북)부여황실의 제실녀(공주)인 섭라국(涉羅國) 파소(婆蘇)여왕이며, 아버지는 섭라국 폐신(嬖臣) 혁서거(奕西居)이다.(#2[위화진경]) 박혁거세의 모계혈통 파소는 부여출신이다. 부계혈통인 혁서거의 출신은 명확하지 않으나, 당시 섭라국이 지금의 요동반도 남안에 소재한 점을 감안하면 거란족과의 혈연성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백마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기림왕(15대)은 국호를 다시 신라로 바꾼다.(復國號新羅) 김씨왕조의 미추왕(13대)이 즉위하면서 계림(鷄林)으로 바꾼 국호를 다시금 신라로 환원한다. 그런데 [신라사초]에는 바꾼 사유가 명확히 나온다. ‘부군(副君)이 꿈에 백마를 보고 국호를 다시 신라로 바꾼다.(副君夢見白馬 復號新羅)’ 당시 부군인 흘해왕(16대)은 백마의 꿈을 시조의 계시로 이해하고 이를 명분삼아 국호를 신라로 환원한다. 이는 당시 신라지배층의 백마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백마는 박혁거세의 상징이다. 또한 백마는 신라왕의 표상이다. 

참고로 경주 대릉원에 천마총이 있다. 무덤 돌방에서 발견된 장니(障泥-말안장에 딸린 다래)에 그려진 백마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 무슨 근거로 천마(天馬)의 용어를 사용한지 모르나 다소 불편하다. 천마의 용어는 문헌기록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백마로 고쳐 불러야 하지 않을까?


알영부인 용신화, 신라 여왕의 상징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은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난다. 시조가 아님에도 ‘용(龍)신화’를 가진다.

[삼국사기] 시조 박혁거세 편을 보면, 박혁거세와 알영을 가리켜 당시 사람들이 ‘이성(二聖)’으로 칭한 기록(時人謂之二聖)이 있다. 이성은 ‘두 사람의 성인(聖人)’을 일컫는 말로 박혁거세와 알영이 매우 특별한 존재임을 설명한다. 그런데 [신라사초]는 한발 더 나아가 ‘이성치국(二聖治國)’의 표현을 쓴다. 소지왕(21대)때 기록으로 두 성인이 신라를 통치한다고 분명히 명시한다. (#3[신라사초])  이성(二聖)은 박혁거세와 알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해서 신라사회 전반을 지배한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 달리 독특한 ‘이성(二聖)’ 통치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다시 말해 고구려와 백제는 남왕중심의 단일 지배체제라면 신라는 남왕과 여왕의 공동 지배체제이다. 남왕과 여왕은 동등한 권력의 주체로써 신라사회를 공동 통치한다. 특히 여왕의 힘이 강하면, 남왕을 계속해서 교체하며 여왕의 권력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라 중기에 활약한 광명(光明)이다. [신라사초]에 따르면 자황(雌黃-여황제) 광명은 미추왕, 유례왕, 기림왕, 흘해왕, 내물왕 등 5명의 남왕(남편)을 순차적으로 바꿔가며 19명의 자식을 낳는다.(#4[신라사초]) 이는 신라가 여왕을 배출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선덕여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단지 왕력에 포함된 특수한 경우이다.

이런 까닭으로 알영은 박혁거세 왕비를 넘어서는 신라 여왕의 시조로 자리매김한다. 그래서 박혁거세와 동등한 별도의 신화체계를 갖는다. 용은 알영의 상징이다. 또한 신라 여왕의 표상이다. 

참고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알영이 태어난 용의 옆구리 방향이 다르다. [삼국사기]는 오른쪽이고 [삼국유사는] 왼쪽이다. 이는 오늘날의 좌파, 우파 정치성향과는 무관하다. 좌우는 방위개념보다 서열개념이다. 좌가 먼저이고 우가 다음이다. 박혁거세와 알영을 옹립한 세력집단은 진한6촌이다. 박혁거세는 돌산고허촌의 소벌(도리)집단, 알영은 알천양산촌의 알평집단에 의해 각각 옹립한다. 이는 두 집단간의 서열경쟁의 결과물이 방위로 표출된 것이다. [삼국사기]는 소벌집단을, [삼국유사]는 알평집단의 전승기록을 따른다.

▲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알영부인의 우표. 용은 알영의 상징이다. 출처 : 우정사업본부


초기 신화체계의 구성은 파사왕시기가 유력

박혁거세의 백마신화와 알영의 용신화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초기신라가 천년수도 경주에 입성한 시기인 파사왕(5대) 때가 유력하다. 파사왕은 서기97년 알천에서 군대를 사열하며 공식적으로 석탈해의 사로국을 병합하고 경주의 새주인이 된다. 서기전57년 경기북부지역에서 서라벌로 시작한 신라가 150여년의 기나긴 장정을 끝내고 드디어 한반도 동남쪽 끝자락인 경주에 안착한다.

경주에 입성한 파사왕의 신라는 외부세력이다. 이들이 지배층을 형성하며 피지배층인 경주의 토착민위에 군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힘의 지배차원을 넘어 매우 특별한 존재임을 부각시켜야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시조 박혁거세의 백마신화와 알영의 용신화가 박씨왕조에 의해 정립된다.

다만 박혁거세의 난생(卵生)신화는 좀 더 후대에 추가된다. 김씨왕조의 단일지배체제가 확립된 내물왕(17대) 이후가 유력하다. 내물계의 김씨왕조는 같은 북방계통인 김알지를 원조로 받아들이면서 ‘흰 닭이 가져온 금궤에서 태어난’ 즉 ‘백계금궤(白鷄金櫃)’신화를 만든다. 이에 격을 맞춰 시조 박혁거세신화에도 ‘난생’ 개념이 덧붙여진다. 그래서 박혁거세신화는 이전의 ‘백마신화’에 ‘난생신화‘가 추가되며 ’백마청란‘ 신화체계가 만들어진다.      

신라는 3성시조 국가이다. 박혁거세의 박씨왕조, 석탈해의 석씨왕조, 김알지의 김씨왕조이다. 이들 시조의 신화체계는 각기 다르다. 박혁거세는 백마가 등장하는 ‘알(靑卵)’, 석탈해는 까치가 등장하는 ’알(卵)+궤(櫃)‘ 김알지는 흰 닭이 등장하는 ‘궤(金櫃)’이다. 각각의 시조신화는 시조의 상징인 말, 까치, 닭 등 매개체를 달리하며, 알(卵)과 궤(櫃)를 적절히 조합한 신화체계이다. 

▲ 석씨왕조 시조신화는 박씨왕조의 ‘란(卵)’과 김씨왕조의 ‘궤(櫃)’를 병용한다. 출처 : 필자 제공


【참고기록】

#1 [遼史] 卷37, 志 第7, 地理志 1, 上京道 永州 永昌軍. 相傳有神人乘 白馬 自馬盂山浮土河而東 有天女駕青牛車由平地松林泛潢河而下 至木葉山 二水 合流 相遇為配偶 生八子 其後族屬漸盛 分為八部 每行軍及春秋時祭 必用白馬 青牛 示不忘本云 


#2 [魏華眞經]. 昔者 仙桃山 元始聖母 波穌天王 頭戴絳色金冠 身被銀色錦神衣內着紫黃綠四十九彩 率大瓢碧海加耶三仙姑乘彩雲 而下降 于仙桃山 千年老桃 梪王之宮 以爲六部之神 天神 乃率雷火風三神而下降 與聖母合歡 而娠大日光明 天神 是爲奕西居 於是 眞花發於吾土仙骨大昌


#3 [新羅史抄] 炤知明王紀. 一四年 水猿 正月 … 天宮大喜 特賜酒食 于眞 宮聖殿 群臣獻 太平萬壽 金冠大冕 袞龍仙袍 于王及天宮 以賀二聖治國太平萬壽 又獻銅馬宝 玩 于承殿 于淨凰 于般惠 以賀螽 斯 振振金枝玉葉 王乃宴群臣 于眞宮聖堂 夜深而罷


#4 [新羅史抄] 奈勿大聖神帝紀. 十六年 黑龍 二月 神后崩 于寢宮 帝爲之不食 保反曰 母后雖多汝若不食 吾誰爲 夫 帝乃與保反行祥 葬神后于長陵 分骨于各夫隆陵 神后乃阿爾兮聖后之第七女也 身長七尺 重二百斤 一食盡一豚 能善鄕歌神事 繼阿爾兮爲雌皇 四十余年 易夫帝五位 皆有子女 … 春秋六十九 王孫數百人.

 

박찬우 시민기자 horizon1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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