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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 고려대 전 교수, 일본극우학자 찬양

기사승인 2019.09.08  20: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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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역사학에서 한국 역사학을 독립시켜야 나라가 산다.

 

북한역사학은 내부 격렬 토론 거쳐 식민사학 극복

남한역사학은 여전히 일본극우파사관에 갇혀 있어

리지린의 북경대학박사가 남북한 최초역사박사학위

김현구 고려대 전 교수 스승은 극우 황국사관론자

 

▲ 조선개국 4352.09.05. 서울 홍대역 인근에 있는 가톨릭 청소년 회관에서 진행된 북한학자 조희승이 엮은 <임나일본부 해부> 주해 판 출판기념회에서 이덕일 신한대학교 대학원 교수가 밝혔다.

“귀국을 앞둔 어느 날 가족을 데리고 인사차 지도교수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내게는 부모와 다를 바 없는 분이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인구는 1억 2천만 명 쯤되는데 잘해야 7천만명분밖에 생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5천만명분은 밖에서 벌어와야 한다. 그 경우 제1일의 타깃은 한국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이다. 일본사람들은 좀처럼 자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말씀은 평생을 역사연구에 바쳐온 분으로서 일본 역사를 자연과의 관계에서 거시적으로 보신 혜안이고 그 분이 나에게 준 ‘혼네’의 선물이었다.”

이 말은 <김현구 교수의 일본이야기>에서 김현구 전 고려대 교수가 쓴 말이다. 김 전 교수는 서기1980년대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지도교수는 미즈노유라는 인물인데 끊임없이 우리나라 재침략을 노리는 일본극우파 역사관을 갖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밑에서 일본정부가 주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역사를 공부했다.

김 전 교수는 일본은 우리나라를 재침략할 수밖에 없다는 지도교수의 말을 ‘혼네(본심)’의 선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미즈노유가 자신의 부모와 같은 분이라고 한다.

아울러 미즈노유의 일본이 한국을 재침략한다는 견해를,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는 혜안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조선개국 4352.09.05. 서울 홍대역 인근에 있는 가톨릭 청소년 회관에서 진행된 북한학자 조희승이 엮은 <임나일본부 해부> 주해 판 출판기념회에서 이덕일 신한대학교 대학원 교수가 밝혔다.

도서출판 <말>지에서 이덕일 교수가 주해한 북한학자 조희승의 <임나일본부 해부>를 출판했다. 강연에 앞서 출판사 대표가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과 사연을 밝혀 강연장을 가득 매운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이 교수는 이날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하여 김 전 교수와 명예훼손으로 형사재판을 다툴 때 자신을 기소한 임무영 검사의 행태를 비판했다.

임무영 검사가 사실상 일본극우파를 대변하고 조선총독부 식민주의 사관을 주장하는 김 전 교수 편에 서서 자신을 기소했다고 했다.

임무영은 고등검찰청 검사인데 지방검찰청에서 불기소 처분한 것을 김 전 교수 편을 들어 억지기소를 했다고 한다. 고검에서 기소하려면 다시 피의자를 조사해야 하는데 조사도 안하고 기소부터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침략하겠다는 일본극우파학자를 저렇게 표현하는 사람(김현구)을 대한민국 검찰이 대변하는데 이게 믿어지는가.” 라며 임무영 검사의 역사관을 고발했다.

이날 강연은 북한역사관과 남한역사관을 비교하며 진행되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바른 역사학을 정립했다.

반면에 남한은 해방 전의 조선총독부가 만든 식민사관을 그대로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 전 교수가 이날 식민사관을 잇은 대표 인물로 비판대상이 됐다.

해방공간에서 이 땅에는 민족주의 역사학자, 사회경제의 좌파 역사학자, 식민주의 조선총독부산 역사학자가 있었다.

북한은 남한에 파견원을 보내 민족주의 역사학자, 사회경제역사학자들을 대거 월북을 시켰다.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바른 역사를 연구하는 것을 보장하는 등 남한 보다 좋은 조건을 내걸었다.

이덕일 교수는 북한이 이렇게 한 것은 역사를 남북한 체제경쟁수단으로 삼아 자신들이 더 정통성 있는 정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보았다.

이어 남북한 통틀어 역사학에서 최초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은 북한에서 나왔다고 상기시켰다. 남한에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부역한 두계 이병도가 있는데 그는 자기가 자기에게 박사학위를 준 ‘자가’ 박사라고 비꼬았다.

박사학위 내용도 이미 이전에 나온 책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남한 역사학에서 최초 박사라고 하면 이것뿐인데 이는 박사라고 할 수 없다.

결국 북한 리지린이 서기1960년 초에 북경대학에서 고조선연구로 받은 박사학위가 남북한 최초 박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학위를 준 사람은 당시 북경대학 교수인 고힐강이라고 한다. 그는 고사변학파의 중심인물인데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이를 부정하는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논문을 통과시켰다. 리지린의 논문이 그 만큼 고힐강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얘기다.

이날 이 교수는 북한이 조선총독부 식민주의 사관을 어떻게 극복하고 역사를 바르게 정립해 나가는지 과정을 보여주었다.

<림꺽정>소설로 유명한 홍명의 아들, 홍문기가 서기1949년에 일제식민사학을 파헤치는 작업을 한 것을 시작으로 북한역사학계에서는 내부에서 역사전쟁이라고 할 만큼 식민주의 역사관과 민족주의 역사관의 치열한 대립이 있었다.

낙랑군 위치와 임나일본부설이 주요논쟁대상이었다. 문헌사학은 낙랑군을 대륙으로 보는 반면에 고고학은 북한 평양이라고 했다.

리지린이 북경대학에서 <고조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고고유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고고학에서도 낙랑군을 평양이 아닌 대륙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 북한 학자, 조희승이 쓰고 이덕일 신한대학교 대학원 교수가 주해 한 <임나일본부 해부> 책, 도서출판 <말> 출간

이날 주제인 ‘북한에서 임나일본부를 어떻게 보는가’ 에서는 임나위치가 집중 조명되었다. 임나를 우리나라 남부지방으로 보면 설사 임나일본부를 부정하더라도 그는 반만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겉으로만 부정하고 실제는 인정하는 것으로 비판받는다.

북한에서는 임나를 일본열도 오카야마라고 주장한다. 이날 내놓은 북한학자, 조희승의 <임나일본부 해부>에서는 일본열도에 백제, 신라, 가라 등 유적,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에 주목하여 일본열도에 삼한삼국의 분국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임나일본부는 이들 나라들 간의 쟁투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정의한다.

임나일본부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열도 내에서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는 존재할 수 없었다.

가장 유력한 증거로 임나일본부가 존재했다는 서기6세기 까지 일본은 철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당시 우리나라는 철을 생산하여 수출했다. 철을 생산할 정도면 강력한 국가임을 나타낸다.

철도 생산하지 못한 일본 야마토 왜가 철기로 무장한 가야를 정복하여 식민 지배했다는 것은 논리상으로도 맞지 않는다.

따라서 임나일본부설에 말하는 임나가 우리나라 가야라고 하는 것도 모순이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임나=가야임은 분명하지만 임나일본부라는 식민통치기관은 없었고 사신, 외교기관 등이 있었다는 견해다.

이런 견해도 일본인 학자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를 두고 상황이 다시 일본제국주의 시절과 같이 변하면 사신, 외교기관이 아니라 임나일본부였다고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이날 국내 식민사학의 전위대 역할을 해오고 있는 몇몇 젊은 학도들의 낯 뜨거운 거짓말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교수는 민족사학과의 전쟁에서 몸을 사리지 않은 공을 인정받아 서울시립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로 '영전'한 안정준의 실체를 벗겼다.

북한이 낙랑군은 북한 평양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는 <역사비평2016>에서 했다고 했다며 거짓 논문을 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교수직 박탈감이라고 보았다.

안정준과 한 몸이 되어 민족사학을 파괴하는데 앞장선 성균관대학 박물관 학예사, 위가야도 타작대상이 되었다.

위가야는 일본에 있는 한국형 성들이 서기 7세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바른 역사학계를 비난했다. 그런데 일본사전에도 5세기 것이라고 하며 이러한 조선식 산성은 서기전 3세기부터 이어진다고 한다.

이 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 실장으로 있었던 연민수 박사도 비판했다. 그는 연민수 박사는 <일본서기>는 고대에 나온 기록이고 <삼국사기>는 중세기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연 씨가 역사사실성을 <일본서기>가 더 많이 갖고 있다고 보고 있음을 말한다. 이 교수는 이는 일본극우파학자들이 보는 시각하고 같다며 탄식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역사학분야에서도 반국익행위를 일삼는 짓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서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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