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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하기도 전에 기소부터 한 임무영 검사

기사승인 2019.09.06  16: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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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검찰은 조선총독부판 형사소송법으로 식민지체제 유지하고 있다.

글: 이덕일(신한대학교 대학원 교수)

 

조국 사퇴를 주장한 대한민국 검사 임무영

지검 불기소 무시, 고검 임무영이 직접기소

고소인 김현구와 동북아재단서 파견근무함

부산스폰서 사건 룸싸롱서 고추장 추태유명

식민사학두둔, 식민사학비판자 범죄자 취급

 

▲ 고려대학교 김현구 명예교수가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내놓은 자료. 고대의 야마토 왜를 강력한 나라로 그리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인 임나 위치를 경상, 전라, 충청까지라고 그리고 있다. 우측 재침략을 노리는 일본 극우파 교과서에 나오는 지도 그림과 큰 차이가 없다.

-검사 임무영이 조국 후보자 사퇴를 요구

나는 강연회나 인터뷰 같은 공식 자리에서는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언급을 되도록 회피해왔다. 정치적 견해가 없어서가 아니다.

내가 평생을 걸고 추구하는 것이 조선총독부에서 우리 역사를 왜곡한 식민사학을 해체하고 백암 박은식·석주 이상룡·단재 신채호 선생 등이 세운 민족사학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는 이념적으로 좌우를 뛰어넘고, 정치적으로 여야를 뛰어넘는 과제인데,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면 한쪽 편을 드는 것으로 오인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 ‘조국 후보자 사태’도 마찬가지다. 현 사태에 대해 일정한 견해는 있지만 이 또한 정치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표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직 검사가 조국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을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서울 고검의 임무영 검사였다. 그렇다면 이는 식민사관 카르텔과 직접 관련 있는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15년 7월 서울 서부지검으로부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기소되었다. 내가 쓴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김현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기소검사가 서울고검의 임무영이었다. 이 재판을 통해 나와 주위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친일 카르텔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그 카르텔의 작동원리가 어떤지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당초 마포경찰서와 서부지검은 불기소 처분

나는 마포경찰서에 가서 두 번 조사를 받았는데, 마포경찰서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2015년 5월 15일 서부지검의 이지윤 검사가 ‘혐의없음’으로 처분했기 때문이다. 서부지검 이지윤 검사는 「불기소이유통지」에서 이렇게 적시했다.

“학자의 연구결과 및 견해를 다른 학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나름대로 견해를 표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함에 있어 학문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신중하여야 할 필요가 있고, 피의자(이덕일)의 주장은 고소인(김현구)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분석 견해 및 재해석 결과를 표명한 것으로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불기소결정서」)”

서부지검의 이지윤 검사는 학자의 입장에서 견해를 표명한 것으로서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기소되어 재판정에 서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임무영 같은 검사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신성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어떻게 악용하는지 몸으로 체험했다.

지검의 처분에 불복해서 고검에 항고할 수는 있다고 한다. 고검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지검에 재수사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검에서 직접 기소한 경우는 임무영이 유일했다는 것이다. 내 1심을 공익변론한 박찬종 변호사가 “50여년 간의 변호사 생활 동안 처음 보는 사례”라고 말했을 정도다.

임무영이 직접 기소한 이유는 지검에 재수사 명령을 내리면 다시 무혐의가 나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기소할 수 없는 사건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임무영에게 불가능은 없다.

-조사하기도 전에 기소부터 한 임무영

임무영을 통해 경험한 대한민국 검찰은 국가의 신성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도직의 행태로 보기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임무영이 나를 서울고검으로 불러 이른바 ‘조사’라는 것을 한 것은 2015년 7월 1일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집으로 날라 온 검찰의 기소장을 보니 임무영은 이미 6월 26일에 나를 기소했다. 조사하기도 전에 기소부터 한 것이다.

이후 나는 검찰이 특정 사건을 수사하고 압수수색을 한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의구심이 든다. 조사하기도 전에 기소부터 할 수 있는 조직이 뭘 그렇게 증거를 찾느라고 애쓰는지 말이다.

-기소배경은 순수했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임무영과 고소인 김현구가 “동북아역사재단”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김현구는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였고, 임무영은 동북아역사재단 파견검사로서 김현구와 함께 근무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설립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는 매국행위에 대해서는 내가 『우리 안의 식민사관』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에 자세히 썼다.

임무영은 조국 후보자 사퇴를 요구하는 글에서 “조선 시대 언관에게 탄핵당한 관리는 사실 여부를 떠나 사직해야 했고 무고함이 밝혀진 후 복직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같았으면 임무영은 상피제(相避制)에 걸려 당장 의금부에 구속되었을 것이다. 고려·조선이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500년씩 유지된 데는 사법제도의 이런 엄격성과 상호견제가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임무영에게 이런 자기절제는 애초에 없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머니 속의 장난감처럼 넣고 내키는 대로 꺼내 휘둘렀다.

-부산 스폰서 사건과 임무영의 고추장

임무영 덕분에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재판 경험을 하면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큰 인생경험이 되었고, 우리 사회에서 식민사관을 해체하려면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사실도 절감했다.

우리 사회의 좌우, 여야 할 것 없이 식민사관 카르텔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사실도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고검은 다른 자리로 가기 위해 잠시 거치는 곳이 아니면 마지막 보직이란 사실도 이때 알았다.

고검은 길어도 2년 이상은 있지 못하는 것이 관례라는 것이다. 임무영이 이런 고검에 좌천된 것은 2010년에 발생한 ‘부산 스폰서검사 사건’ 때문이었다.

부산·경남의 건설업자인 정용재 씨가 20년 넘게 검사들에게 성 접대를 포함한 향응과 금품을 제공했다고 폭로한 사건이었다.

사건 당사자인 정용재 씨의 증언을 정희상·구영식 두 언론인이 활자화 한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책보세, 2011)』에 그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이 책에 임무영이 등장한다.

“임무영 검사는 술 마시기 전에는 얌전했는데 룸살롱에 가니까 돌변했다. 아가씨를 무릎 위에 앉혀서 러브샷을 하는가 하면 고추장이나 마요네즈를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이 부분은 너무 민망하여 이 정도로 요약했다-편집자 주). 가장 화끈하게 놀았다(『검사와 스폰서, 잃어버린 진실』, 119쪽)”

차마 책에도 쓸 수 없는 민망한 행위는 물론 대한민국 수사권과 기소권을 담보로 받은 향응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룸살롱 아가씨들에게 내가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사과하고 싶다.

▲일본극우파가 만든 역사교과서. 여기에는 고대에 일본 야마토왜가 우리나라 남부를 점령하여 식민지배했다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임무영의 기상천외한 질문

이미 기소당한 줄도 모르는 나는 서울고검에 가서 임무영에게 이른바 조사라는 것을 받았다. 임무영이 윽박지르며 따진 것이 생각난다.

“박제상이 일본에 인질로 간 것이 사실 아니냐?”

박제상은 신라 눌지마립간(재위 417~458) 때 왜국에 인질로 간 왕의 아우 미사흔을 몰래 귀국시킨 후 왜국에서 사형당한 신라의 충신이다.

내게 박제상은 어린 시절부터 왜왕의 회유에 “계림(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다”면서 불타 죽는 길을 택한 충신인데, 임무영이에게는 왜국이 옛날부터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를 말해주는 사례였던 모양이다.

박제상이 왜국에 인질로 간 사실을 가지고 검사 임무영이 역사학자 앞에서 기세등등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임무영이 대변한 김현구의 역사관

임무영이 나를 기소하자 그때부터 대한민국 검찰 전부가 나를 죽이자고 달려들었다. 김현구는 대한민국 검찰이란 무소불위의 빽을 가지게 되었고, 나는 일제강점기 일제 순사에게 쫓기는 독립운동가의 처지가 되었다.

평생을 일제 식민사학에 맞서 싸우던 고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가 같은 대학에 근무하던 김현구에 대해서 평가한 말이 나를 기소한 임무영의 속마음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역사를 팔아서 학위를 얻은 김현구 씨의 소행을 구한말의 이완용 일파의 매국행위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비유일까?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한 사람은 정치를 한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정도라고나 할까?(최재석, 『역경의 행운』, 2011, 326쪽)”

대한민국 검찰이 고 최재석 명예교수가 이완용에 비유한 사람 편에 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김현구에게 부모 같은 일본 극우파 사학자

최재석 교수는 김현구의 와세다대 지도교수인 미즈노 유(水野祐)를 주목했다. 최재석 교수는 “미즈노는 실존 인물도 아닌 일본의 진구(神功:신공)황후가 한국(삼한)을 점령하였으며 서기 1세기부터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동화 같은 역사왜곡을 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미즈노 유는 일본의 신공왕후가 고구려·백제·신라를 점령했으며, 서기 1세기부터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는 극우파 역사학자였다.

고 최재석 교수는 『역경의 행운』에서 김현구에 대해 “일본에 가서 취득한 학위논문에서 고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였다면 이는 지도교수의 영향으로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갈파했다. 그런데 김현구는 이런 미즈노 유에 대해서 자신의 저서에서 부모같은 분이라면서 이렇게 썼다.

귀국을 앞둔 어느 날 가족들을 데리고 인사차 지도교수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랜 지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내 학문을 만들어주시고 많은 감화를 주신 분이기 때문에 내게는 부모와 다를 바 없는 분이셨다…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의 인구는 1억 2천만 명쯤 되는데 일본은 땅덩어리가 작아서 잘해야 7천만 명분밖에는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5천만 명 분은 밖에서 벌어 와야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순조로운 지금은 구미에서 벌어오지만 어느 땐가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면 결국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이고 그 경우에 제일의 타깃은 한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이 말씀은 평생을 역사연구에 바쳐 오신 분으로써 일본 역사를 자연환경과의 관계에서 거시적으로 보신 혜안이고 그분이 나에게 주신 ‘혼네’의 선물이었다(김현구, <김현구 교수의 일본이야기>, 창작과 비평사, 1996년, 82쪽」

김현구는 일본이 다시 한국을 침략할 것이라는 미즈노의 망언에 분개하는 대신 ‘혼네(본심)’의 선물이라고 감읍했다. 이런 인물은 대한민국 검찰권의 막강한 보호 아래 있고, 이를 비판한 학자는 대한민국 검찰의 시퍼런 칼날에 시달려야 했다.

-조국 후보자에게

『대학』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조 후보자가 지금 겪는 일은 수신(修身)과 제가(齊家)가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수신제가가 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사회를 개혁하고자 나서는 사람은 수신제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 준다고 하겠다.

만약 여러 난관을 뚫고 법무장관이 된다면 여러 가지 일하려고 하지 말고 검찰개혁, 즉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분리 문제만 제대로 처리해도 소임을 다 한 것이라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러면 상처 받은 명예도 저절로 회복된다.

이덕일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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