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생충’은 거악구조문제는 눈감고 '을'들의 절망만 발산한 영화에 불과하다.

글: 임재해(안동대학교 명예교수)

 

 

<영화 ‘기생충’을 보니까>

빈부차이를 상투적으로 보여 줄 뿐

문제해결 대안 부재 절망감만 음습

극한 폭력남발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엽기영화가 울고 갈 대중영화에 불과

 

▲서기2019년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화 '기생충' 홍보물. 봉준호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섹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칸 영화제에서 최고 상으로 꼽히는 '황금종려상'을 받아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이 상에 힘입어 영화표가 평상시보다 많이 팔린다고 한다.

“역시 황금종려상을 받을 만하다”는 공감을 전혀 할 수 없어 몹시 아쉬웠다. 차라리 대상을 받지 않았다면 대중영화로써 즐길 만한 수준작이라 할 만하다.

수상작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실망이 더 컸다는 말이다. 평론가들조차 수상작에 끼워맞추어 호평 일색의 영화평을 하는 것도 불편하다.

빈부 차이의 문제의식을 상투적으로 보여줄 뿐, 해결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사기취업의 술수와 지하실에 숨어사는 범죄적 ‘을질’을 통해 끔찍한 결말에 이르게 함으로써, 좋은 극적 장치를 섣부르게 다룬 아쉬움이 크다. 결말 무렵에 보여주는 그 흔한 극적 반전의 충격조차 보이지 않았다.

특히 반지하생활을 하는 사람의 천박한 일상과 사기취업 묘사는 실제로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번듯한 자기 집이 없다고 하여 천박한 삶을 살 것이라는 편견이야 말로 가진 자들의 횡포이자 가난한 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백주 대낮에 평화로운 잔치 판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장면, 이를테면 돌로 머리를 내리치고, 칼로 가슴을 찌르고, 산적용 꼬치로 옆구리를 쑤시는 폭력은 조폭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울 만큼 끔찍하고 살벌하다.

폭력을 휘둘러도 필연성을 지니면 설득력이 있는데, 지나치게 우발적으로 처리되어 황당하다. 더구나 사기취업과 욕설, 잠입, 섹스, 폭력, 칼질 등이 진지한 숙고의 과정 없이 너무나 가볍게 또는 충동적으로 이루어져서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영화이다.

더 문제는 가난한 자들에게는 사기취업과 지하실 잠입과 같은 기생의 방법 외에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다. 절망감을 안겨주는 뿐이다.

공생과 기생,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 양상도 들쑥날쑥하여 설득력이 부족하다. 두 가족의 숙주와 기생 관계를 역전시키는 반전을 기대했지만, '기우'의 꿈처럼 헛된 희망으로 끝났다.

두 가족을 다룬 작품이어서 가족영화라 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의 가족에 속하더라도 가족들이 함께 관람하는 데는 제법 불편한 까닭에 가족관람 불가영화라 할 수 있다.

수상 소식이 영화 관객몰이를 부추긴다 하더라도 영화평마저 수상의 선입견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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