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재일동포의 일생에 걸친 투쟁과 희생으로 강제징용비를 세울 수 있었다.

서경덕 교수와 일제강제징용흔적 답사(1일차)

강제징용 유적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둔갑되어 전시 중

유네스코에 강제징용 표기 약속도 지키지 않아

윤동주 순국지는 아무 표시도 없이 놀이터로 만들어

 

▲서경덕 교수가 만다갱에서 유네스코 지정 안내판을 설명하고 있다. 지정 안내판에 강제징용 안내가 없으면 유네스코 지정 취소 사유가 된다고 설명하였다.

단군기원 4352년 4월 12일부터 14일가지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가 함께 일본 역사 유적지를 답사하였다.

이번 일정은 후쿠오카와 나가사키로 이어졌다. 이 두 도시는 왜국 내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석탄 채굴량이 많아 강제징용이 많이 있었던 지역이다.

이 지역 강제노동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 주도에서 대기업이 주도하는 변화양상을 띠고 있다. 왜정 시절 왜국의 3대 대기업은 아소기업집단(아소), 미쓰이기업집단(미쯔이), 미쯔비시기업집단(비쓰비시)이다.

이 중 후쿠오카 지역의 미이케 탄광은 미쓰이가, 나가사키 지역의 군함도 및 다카시마 탄광은 미쯔비시가 주로 강제 징용을 맡았다. 미쓰이는 소극적이지만 강제징용을 인정하고 현재 재일본 조선인들에게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쯔비시는 왜국 우익집단의 악질에 가장 가까운 행태를 보여주는 기업이다. 최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대해 국내에도 악명이 잘 알려져 있다.

답사단이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미이케 탄광의 ‘만다갱’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미이케 탄광의 9개 광맥 중에서 가장 큰 갱도다. 총 9000명의 조선인이 강제징용 되었다고 전해진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안내판 어느 곳에도 그런 문구는 찾을 수 없었고 현지 안내인 또한 그런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서경덕 교수가 강제징용 관련하여 안내인에게 질문을 던지자, “조선인도 이곳에 온 것은 사실이나, 정확히 얼마가 있었는지는 자료가 부족해서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라고 대답했다.

탄광을 나오면서 유네스코 공식 안내판을 읽어 보았으나 강제징용에 대한 설명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서경덕 교수는 “강제징용 사실 표시 관련 내용을 이미 유네스코에 통지해 놓았으니 왜국이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왜국 산업혁명유산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 는 내용을 답사단에 전했다.

▲일본 후쿠시마 강제징용 위령비. 미쓰이 주식회사가 설립자임을 명백히 표시하였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후쿠시마 시에 있는 강제징용 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곳이다. 미쓰이 사측에서 위령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위령비 앞 비석은 서기2015년에 일본 우익들이 그 위에 욱일기를 그려놓아 최근에 변경되어 있었다.

위령비에는 강제징용 진실규명을 위한 한 사람의 일생에 걸친 노고와 희생이 새겨져 있었다. 재일동포 우판금 씨가 25년 동안 250회 이상 미쓰이 사에 항의 방문한 끝에 가까스로 기념비 건립 결정을 받아냈다.

우판금 씨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가 위령비 뒷면 건립문에 새겨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징용되고, 이 땅에서 희생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하고 기원합니다. 설립자 우판금, 토지 제공 오무타 시, 협력자 미쓰이재단” 이라는 문구다.

위령비가 설치된 이곳에서는 재왜동포와 기타 단체들을 중심으로 해마다 4월에 위령제가 열린다고 한다.

첫째날 마지막 일정은 후쿠오카 형무소였다. 이곳은 윤동주 시인이 왜국의 생체실험대상이 되어 순국한 곳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이곳 형무소 부지는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매우 넓었다.

왜국의 패전 이후 부지 대부분 아파트단지와 놀이터 등으로 바뀌었다. 현재 후쿠오카 구치소는 부지 중앙에만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윤동주 시인이나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념할 어떠한 공간이나 기념물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윤동주 시인이 순국 장소는 놀이터 한 가운데로 추정된다. 일본 내 ‘윤동주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이곳에 윤동주 시(詩)비를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후쿠오카 시와의 갈등으로 현재까지도 건립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2일차에 계속)

▲ 시인 윤동주가 일제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순국한 일본 후쿠호카 형무소터. 왜국은 이 곳에 아무 표식도 남기지 않고 놀이터로 만들었다.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가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위령비 앞에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 이번 일제강제징용 만행 흔적 답사에는 젊은 학생들이 대거 참가해 젊은이들의 역사의식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 교수 왼쪽 비석 흰 부분에는 당시 국내 어느 지역에서 강제로 끌려가 징용에 혹사 당했는지 적혀 있다. 경기도 고양군, 여주군 등이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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