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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앞장서서 일제에 바친 순종임금

기사승인 2019.04.12  06: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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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삼한일통을 이룬 고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의미다.

 

글: 류돈하(역사연구가)

 

쓸데없이 싸우지 말고 일왕신민 되라는 순종임금

나라 팔아먹었지만 고종임금도 인정한 단군조선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제국 황실을 우대하겠다고 임시헌장에 명기

국권회복 뒤 국회소집 계획도 임시헌장에 밝힘

 

▲순종황제가 이토오히로부미와 개성 고려 만월대를 둘러보고 내려오고 있다. 일제는 강제병합 1년전인 서기1909년 순종황제를 데리고 서북행을 했다. 일본제국과 대한제국이 하나로 합치는 것을 조선인민들에게 알려 식민지배를 정당화 하고자 했다. 긴 외투를 입은 이가 순종황제, 왼쪽 곁에 흰수염을 하고 훈장을 더덕더덕 단 자가, 서기1905년 우리 외교권을 박탈하고 조선통감이된 이등박문(이토오히로부미)이다. 그 왼쪽 옆에 고개를 숙이고 머리 가운데 가르마를 한 자가 매국노 이완용으로 보인다(편집인 주).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대한제국실> 영상 갈무리

1910년 경술년 8월 동방의 나라 대한제국이 멸망했다. 일본왕 목인(睦仁:명치왕)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합병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같은 해 8월 29일 대한제국의 황제 순종 융희황제는 다음과 같은 조약문을 공표한다.

"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臨御)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維新)하는 것에 관하여 누차 도모하고 갖추어 시험하여 힘씀이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원래 허약한 것이 쌓여서 고질이 되고 피폐가 극도에 이르러 시일 간에 만회할 시책을 행할 가망이 없으니 한밤중에 우려함에 선후책(善後策)이 망연하다.

이를 맡아서 지리(支離)함이 더욱 심해지면 끝내는 저절로 수습할 수 없는 데 이를 것이니 차라리 대임(大任)을 남에게 맡겨서 완전하게 할 방법과 혁신할 공효(功效)를 얻게 함만 못하다.

그러므로 짐이 이에 결연히 내성(內省)하고 확연히 스스로 결단을 내려 이에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여 밖으로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팔역(八域)의 민생을 보전하게 하니 그대들 대소 신민들은 국세(國勢)와 시의(時宜)를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각각 그 직업에 안주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라.

짐의 오늘의 이 조치는 그대들 민중을 잊음이 아니라 참으로 그대들 민중을 구원하려고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

나라가 망하자 향산 이만도, 회은 류도발, 동은 이중언, 매천 황현 등의 선비들은 자정순국으로 일본의 강제 병합에 항거하였다. 암흑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제국의 백성들은 나라잃은 슬픔에 잠겨야 했다.

강제합병의 공으로 훈작과 훈장, 은사금을 챙긴 이완용, 이해승,송병준 등 매국노들은 떼지어 희희낙락喜喜樂樂하였으며 섬나라 오랑캐에게 점령당한 땅에서 살기 싫어 조국강산을 등지고 망명한 명문가의 선비들은 거국음을 읊으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또 광복光復과 새나라의 건설을 위해 서간도로 망명하여 학교를 세우고 다시 되찾을 나라의 인재를 양성한 이도 있었다.

광복구국운동에 힘쓴 지사들은 서간도, 북간도, 서울 각지에 흩어진 광복세력들의 힘을 한데로 모아 통합임시정부를 구상하였고 그 뜻은 마침내 삼일운동 직후인

1919년 기미년 4월 10일 상해 조계에 모여 임시정부를 세우기 전 국호를 정하였다. 그 중 우창 신석우(申錫雨. 1895~1953)는 나라의 이름을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몽양 여운형은 잠깐 일어났다 망한 나라의 이름을 다시 되살릴수 없다고 반대하였으나 25살의 청년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고 하여 드디어 표결에 부쳐 대한이라는 국호가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갑자기 생긴 나라가 아니다.

대한제국의 뒤를 이어 제국에서 민국으로 바뀌었을 따름이고 이전부터 이어온 유구한 역사와 문화 그 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다.

대한제국의 사용은 1897년 정유년 10월 13일에 고종 이형李㷩이 황제위에 오를때 새 국호로 선포하였는데 새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정하게 된 취지와 이유는 고종봉천승운황제(奉天承運皇帝)의 반조문頒詔文에 잘 드러나 있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즉 우리나라는 단군조선 이래 삼조선 내지 삼한으로 불리었는데 삼한을 일통一統한 고려태조 왕건의 삼한통일 위업을 받들어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한다는 의미이다. 이리하여 1897년 대한이라는 새로운 국호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한이라는 알맹이에 조선,한韓, 고려로 표현되는 정통성과 유구한 전통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1919년 4월 11일 나라이름이 그대로 대한으로 정해지고 이틀 후인 4월 13일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니 대한민국의 역사는 1948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1919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함이 마땅하다.

4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생일 즉 개국일이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

제2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이를 통치한다.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과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

제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신교(信敎), 언론,저작,출판,결사,집회,신서(信書),주소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한다.

제5조. 대한민국의 인민으로서 공민의 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지닌다.

제6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교육 납세 및 병역의 의무를 가진다.

제7조. 대한민국은 신(神)의 의사에 의하여 건국의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고 나아가 인류의 문화와 평화에 공헌하기 위해 국제연맹에 가입한다.

제8조. 대한민국은 대한제국(구)황실을 우대한다.

제9조. 생명형, 신체형 및 공창제를 전폐한다.

제10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토회복 후 만 1개년 내에 국회를 소집한다.

대한민국 개국開國 101년 4월 11일 갈와(葛窩) 류돈하 적다.

류돈하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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