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고기> 전한 이유립 비난에 인생 건 이문영 자승자박 수렁에 빠지다.

 

소설가 이문영,

<한단고기> 이유립이 창작했다고 우기기 신공

자기 영혼의 모국, 기자조선 부정하는 일제에 반기

역사성 부정하던 <규원사화>도

‘위대한 역사’ 증언하는 ‘역사책’이라고 극렬 찬양

 

▲조선개국 4349.03.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이문영 소설가가 <한단고기>위서론을 펼치고 있다. 한국고대사학회가 이 해 전반기, 후반기로 나눠서 시민대중을 상대로 일본극우파,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을 '시민강좌'라는 가면을 쓰고 전파하는 자리였다.

소설가가 역사학에 겁 없이 뛰어들 때 어떤일이 벌어질까. 횡설수설이라는 말이 적당하겠다.

이문영이라는 소설가가 있다. 요즈음 그의 활동을 보면 본업을 접은 것 같다. 책이 안 팔려서 일지도 모른다.

대신에 환상을 가미하는 소설과는 정 반대 성격을 띠고 있는 역사학으로 밥벌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내놓은 책만 보아도 역사학에 관한 것이다.

그는 우리 태고사, 상고사, 고대사는 물론 우리 고유 문화와 사상, 철학, 종교를 증언하는 <한단고기> 파괴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의 지난 행각을 보면 <한단고기>와 이를 전한 이유립 선생을 찍어내는 데 인생을 걸었다. 그의 주특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기에 매달려 있다.

그의 이런 정성을 제도권 식민사학계가 기특하게 여겼는지 제도권 식민사학계의 각종 행사에 강사로 불러 <한단고기> 위서론을 펼치도록 하고 있다.

소설가로 닦은 필력 덕분인지 한 신문에서는 그에게 고정 게시판을 할애하여 민족사학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도록 허용한 적도 있다.

그런 그가 지난 조선개국4352(서기2018).10.19.~20. 에 걸쳐 서울대학, 사범대학 일대에서 진행된 전국역사학대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학대회 책자에 당당히 한꼭지를 올려 반민족역사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대회는 역사학대학대회를 주최한 ‘전국역사학대회 협의회’, 주관한 ‘역사학회’ 및 이들의 이틀간의 대규모 행사 뒷 돈을 댄 한국연구재단, 국사편찬위원회가 공모하여 이루어졌다.

왜 이들이 ‘공모’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이들은 시종일관 민족사관은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족사관은 대일독립전쟁기 독립투사들의 역사관이다. 광복군의 정신전력이었다. 대표 사례가 신흥무관학교 교가에 나온다.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에 영절에 여러만만 헌원자손 업어기르고

동해섬중 어린 것들 품에다 품어 젖먹여기른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

그네가슴 끓는 피가 우리핏줄에 좔좔좔 걸치며 돈다”

교가는 3절까지 있는데 위 가사는 1절이다. 신흥무관학교는 진보 탈을 쓴 식민사학자들도 인정하는 우당 이회영, 석주 이상룡 일가가 세웠다. 학교는 처음 신흥강습소로 시작했는데 이 때가 서기1911년이다.

학교는 이듬해에 낙성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학교에서는 역사과목이 필수였다. 석주 이상룡이 저술한 <대동력사大東歷史>를 학교 교재로 사용했다.

서기1920년 일제의 탄압으로 쇠퇴기로 접어 들었지만, 약 3천5백여명을 배출해냈다. 무관들이다. 일반 사병이 아니다. 이들은 대일전쟁 초기 만주에서 일본군과 싸워 위대한 전과를 올린다.

흔히 말하는 청산리대첩, 봉오동 전투 등이 모두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군들이 주도하여 이룬 전과다.

▲만주에 건설된 대일독립전쟁 무관 양성학교, 신흥무관학교 일대에서 학생들이 일을 하고 있다. 식량을 자체 해결하는 영농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하여 고통 속에서 무관을 배출했다고 한다.

교가를 보면 이 학교 독립군들의 정신무장을 엿볼 수 있다. 또 어떤 역사관을 갖고 전쟁에 임했는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에 영절에 여러만만 헌원자손 업어기르고” 라고 한다. 민족사관의 공간과 시간이 드러난다. 흑룡은 북만주 흑룡강을 뜻한다. 태원은 현재 중국 산서성 태원을 말한다. 이 글만 보면 고구려 초기 강역과 일치한다.

또 여러만만 헌원자손 업어길렀다고 한다. 헌원은 중국 신화속 인물인 황제헌원으로 보인다. 헌원 이래 중국 족속들을 업어길렀다고 한다.

이 역사관을 보면 지금 우리가 배워온 역사와는 완전히 다르다. 역사이래 우리는 중국에 시달리거나 조공이나 바치는 속국역사로 각인되어 있다. 교가는 정반대라고 한다. 헌원이래 우리가 주인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어떤가. 교가에 "동해섬 중 어린 것들 품에다 품어 젖먹여 길렀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는 굳이 고증을 안해도 이 가사는 상식에 속한다. 일본극우파와 이들의 심부름 꾼인 식민사학계만 부정하고 있다.

이 땅, 대한강토에서 일방적으로 이주해서 만들어진 게 일본역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고고학 유물, 풍습, 문화, 혈통, 지명, 유전자, 골상학 등 모든 자료가 이 땅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세운 나라임이 증명되고 있다. 그러니 어린 것들 젖먹여 길렀다는 역사관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날 역사학대회에서는 이런 사실을 말했다간 사문난적으로 찍혀 학계에서 매장된다는 분위기였다.

이들은 우당 이회영, 석주 이상룡 등이 외친 민족과 역사관을 유사역사학이라고 비난한다. 사이비역사학이라고 저주를 퍼붓고 있다. 심지어 ‘파시즘’, ‘쇼비니즘’이라는 알아 먹기 힘든 말까지 동원하여 매장시키고 있다.

이렇게 진행된 역사학대회이니 이들에게 ‘공모’했다는 평가가 틀리지 않는다. 국가기관이 참여하여 자금지원을 했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석주 이상룡 선생의 임청각을 복원하겠다고 했다. 이는 독립투사들의 희생을 기리겠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런 대통령의 뜻에는 아랑 곳 하지 않고 독립투쟁사를 부정하는 짓을 국가 세금으로 거대한 판을 벌여 진행했다.

▲조선개국4280.10.19. 신흥무관학교를 이끈 독립투사들이 해방 후 학교를 부활시켰다. 사진은 신흥학교 교정에서 찍은 것이다. 가운데 흰 두루마기를 입은 이가 우당 이회영과 형제인 성재 이시영이다. 현재 경희대학교로 알려져 있다. 경희대학교로 이름이 바뀐 것은 학교가 재정난에 빠지고 6.25전쟁을 거치며 학교를 부활시킨 성재 이시영이 이승만 독재에 반대하면서다. 학교부활 취지와 반대되는 이사들 및 친 리승만 계열 이사들이 들어와서 기존 세력이 밀려나면서 이름이 바뀐다. 사진에 분명히 단기4280년이라고 새겨져 있다. 조선개국4280년이라는 소리다. 이문영과 같은 일본극우파, 조선총독부사관 숭배자들은 단기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단군을 신화, 전설로 매도한 조선총독부 사관도 이와 같다. 역사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 단군기원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짓을 벌인 중심인물 중의 하나가 소설가 이문영이다. <한단고기>는 이유립 선생이 전한 것인데 석주 이상룡 선생의 역사관과 일치한다. 신흥무관학교 교가에 녹아있는 역사관이 고스란히 <한단고기>에도 들어있다.

<한단고기> 초간본이 서기1911년 경에 나온 것으로 파악된다. 계연수라는 인물이 당시 존재한 여러 단행본 사료를 묶어 내놨다고 한다.

교가에는 ‘배달나라’ 라는 용어가 나온다. <한단고기>에 편철된 <안함로삼성기>에도 한웅천왕이 신시에 도읍하고 나라이름을 ‘배달’이라고 했다고 나온다.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온 <한단고기>문헌과 <신흥무관학교>교가인데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가.

이는 이문영이 이날 극렬 비난한 <한단고기>가 그의 말대로 이유립 선생이 창작하지 않았다는 유력한 근거다.

이문영은 이날 이유립이 <한단고기>를 창작했다는 전제하에서 이유립의 역사관을 맹 비난, 조롱했다. 또 독일에서 유학하고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 같은 민족사학자도 함께 조롱했다.

그는 <한단고기>가 이유립 선생이 위조한 것이라고 하려다가 기자조선을 인정하는 자승자박에 빠졌다. 이유립 선생이 기자조선을 부정한다면서 결과적으로 그게 아니라고 했다. <삼국유사>를 언급하며 기자조선이 실재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기자조선은 이문영이 추종하는 조선총독부 식민사관과는 맞지 않는다. 기자조선을 인정하면 한국역사가 3천년 이상이 된다. 일본 역사는 2천 6백여년이다. 식민통치를 하려면 이렇게 되면 안된다.

기자조선을 부정하고 위만조선부터 인정해야 한국역사가 2천여년 정도가 되어 일본역사보다 짧아진다.

이문영은 이유립을 증오한 나머지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자신이 숭배하는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웃지 못할일을 벌이고 있다. 그를 여러 강연에 강사로 불러 주는 강단사학계가 알면 바로 강사자리 짤릴 일이다.

▲조선개국4252.10.19. 서울대학 사범대학 일대에서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렸다. 사진은 19일 사범대학 대강당에서 본대회가 열리는 장면이다. 토론자들과 발표자들이 나와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규원사화>도 ‘역사책’이라며 사료로 인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유립선생 때문이다. 이유립 선생이 하는 것은 무조건 매도, 비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규원사화>를 사료로 인정하고 있다.

이유립 선생이 <규원사화>를 부정하는데 그게 아니라고 비난하다가 그만 사료로 인정해 버린 것이다.

<규원사화>는 강단식민사학계에서는 불온서적으로 찍혀, 보면 안되는 책이 된지 오래다. 당연히 위서, 가짜로 낙인찍혀 있다. <규원사화> 위서론 대표론자가 조인성 경희대학교 교수다.

이문영은 서기2016.03. 조인성 교수가 이끄는 한국고대사학회 시민강좌에 강사로 나와 <한단고기> 위서론를 펼친바 있다. 역사학대회에서 <규원사화>를 ‘역사책’으로 인정해버렸으니 이 일을 한국고대사학회가 알면 큰일이다.

그는 이유립을 비난하면서 이 같은 말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유립이 이렇게 <규원사화>를 깎아내린 것은 기자조선을 한국사에서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이 말을 통해서도 이문영은 <규원사화>는 깎아내려서는 안되는 ‘역사책’이고, 기자조선도 한국사에 들어와야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망상을 기본으로 하는 소설가가 사실학을 기본으로 하는 역사학에 함부로 발을 담글 때 무슨일이 벌어질 수 있는 지 이문영이 아낌없이 보여준 시간이었다.

일본극우파, 조선총독부 사관을 숭배하던 이문영이 민족사학으로 개과천선했다는 조롱을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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