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일대에 묻힌 마지막 동학농민혁명군 흔적을 찾아 나섰다.

글: 낭랑 조정미(동학혁명북접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겨울부터 늦음 봄까지 시작된 동학혁명군 흔적찾기

우거진 수풀, 거친 길 뚫고 앞으로 앞으로 나감

동학혁명군 지나갔을 우거진 숲, 길목에 술잔 올리다

 

▲서기2018.11.11. 충북보은 북접동학혁명기념사업회와 의백학교는 기념사업회 발족식과 현장수업을 보은일대에서 진행했다. 행사를 마치고 동학혁명공원을 둘러보고 위렵탑을 참배했다. 가운데 팔을 들어 뒤쪽가리키며 안내는 이가 기념사업회 낭랑 조정미 사무국장이다.

2017년 2월 25일 124보은취회를 준비하기 위한 첫모임이 보은에서 시작되었다. 1시간 늦게 도착한 모임자리에서는 올해 어떤 행사로 준비할 것인가가 한창 논의중이였다.

보은취회는 매년 준비 모임 전에 지난해 중심으로 활동한 사람들에게 문자를 돌리면, 마음을 내어 참석한 사람들 중심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마친 후 전국 자기 생활터전으로 돌아가는 구조이다.

중심행사요원들은 스스로 마음을 내어 하고픈 일을 펼쳐 사람들을 만나고 내년을 기약한다.

회의를 참석하면서도 올해 난 어떤 모습으로 동학을 만날까를 정한바 없었다. 내가 얘기할 차례가 되었을 때 간단히 인사를 마친 후 나의 입에서는 올 계획이 술술 나왔다. 마치 준비해 왔다는 듯이 말이다.

재작년 북암마을을 방문하였다. 속리산둘레길 200km 중 보은에 조성된 50km 근처 20개 마을을 조사하던 중이였다. 마을어르신 몇 분을 통해 들은 바 1894년 12월 겨울 북실 마지막 전투 때 일본군에 의해 2600여명이 몰살당했다.

일부 살아남은 동학농민군 중 10명이 종곡저수지를 지나 수철령을 넘어 우리 마을에 들어왔와서 7명은 죽어 이병골에 묻었고 3명은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수철령을 넘는 길을 순례하는 일정을 시작했다.

3월 18일 ‘아시반’, ‘조국통일’과 첫 답사를 시작하였다. 동학군이 묻힌 자리에서 막걸리 한잔 올리고 시작하였다. 인공위성지도로 이미 오늘 답사할 길을 점검하겠다.

이 길은 말티재가 있기 전부터 하판, 북암 사람들이 아주 오래 예전부터 읍내로 짐을 어깨에 메고, 머리에 이고, 소와 대추를 팔러 일상적으로 걸어 다녔던 옛길이기도 하다.

길 상태를 모르니 첫날은 확연한 북암마을길에서 출발해서 종곡으로 넘어가는 역행의 길을 택하였다. 북암1,2리를 가로지르는 달천을 따라 걷는다.

북암1리 중심마을을 지나고 양계장과 저수지를 지나 두 골짜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수철령 방향으로 왼쪽으로 도니 길 옆 밭에 냉이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우리는 저녁 냉이된장국과 냉이빈대떡을 만들만큼 넉넉하게 뜯은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피난민 중심으로 개척된 10채의 산골 오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경운기를 정비하고 있는 어르신께 수철령 마을뒷산을 넘는 길을 물으니 길 2개가 나타났다. 좀 더 잘 닦인 길을 선택하였다.

오지 골짜기 마을 끝까지 길이 포장되어 있었다. 방댐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청명하다. 골짜기 느낌이 맑다. 포장된 길 끝자락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집 한 채가 있었다.

왼쪽으로 오르니 산소로 가는 길이 나타났다. 산소에서 내려다보니 동향으로 시야가 튀인 방향으로 곡선 농로 길과 속리산 자락의 산 능선이 한 폭의 그림이다.

여기부터는 숲길이다. 잣나무로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니 가시덩굴로 우거진 잡풀이 길을 가로 막고 있다. 아직은 잎이 나지 않아 눈에 보이는 가시덩굴 중심으로 낫질을 하였다.

사람이 1명이 지나갈 넓이로 쳐내면서 수철령 고개마루에 올랐다. 문어발처럼 쑥쑥 뻗어간 참회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이 좋다. 수철령 산등선은 백두대간 한남금북정맥의 일부이다.

돌탑 주춧돌을 만들어놓고 술 한잔을 올렸다. 언젠가 이 길을 갈 사람들이 123년 전에 이 길을 갔던 동학농민군을 생각하며 이 돌탑을 완성하길 빌었다.

정상에서 종곡방향으로 내려오니 갈지자 길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마른 참나무와 밤나무 잎이 발목까지 쌓여있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작은 나무들이 자라지 못해 옛 모습 그대로 옛길이 고스라니 남아 있었다.

어렵지 않게 산의 중간쯤을 내려오니 말라버린 골짜기가 나타났다. 물길과 옛길이 만나는 곳 부터는 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골짜기를 눈으로 익히고 내려오니 작은 돌탑과 옹달샘이 나타났다. 종곡에서 올라오는 산 입구에서부터 이어진 것이다. 샘물이 달다. 소풍과 같은 하루였다.

4월 15일 ‘설화’, ‘차헌’과 2차 답사를 시작했다. 오늘은 종곡에서 북암으로 순행으로 순례한다. 나뭇잎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작은 돌탑이 있는 숲길 시작부터 낮게 자란 잡풀들을 낫으로 제거하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미리 준비한 진한분홍띠지를 나무에 묶어 표시해놓고 나아갔다. 고개마루에 이르니 저 아래 종곡저수지가 반짝인다. 높이 15cm도 안 되는 돌탑에 돌하나 또 올려 놓는다.

5월 4일 원광대 ‘박범’과 짝꿍, 일본연수생, ‘아시반’, ‘차헌’과 함께 3차 답사를 시작한다. 더 자란 잡풀을 쳐내느라 발걸음이 지난 답사보다 더 더디다. 보은취회 행사에서 이 길을 걸으며 나는 길을 안내하고 교수님은 동학과 연결한 해설을 하기로 한다. 북암학교에서 답사를 마치며 돌아오는 길에 이병골을 안내하였다.

5월 24일 ‘해야’와 함께 4차 답사를 한다. 서울에서 온 ‘해야’는 이번 순례때 사진촬영을 해주기로 하였다. 그는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왔는데 잘 정비된 언덕 길을 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난이도 3이라 생각하고 온 길이 8이였다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낫질하는 내 뒤를 잘도 따라 온다.

오늘은 길도 헤맸다. 성큼 자란 잎들이 시야를 막는다. 찔레꽃 향기가 온 산을 덮고 있었다. 다음 달 순례에 산딸기도 맛 볼 수 있겠다. 보은읍에서 저녁을 먹으며 행사 일정을 점검한다.

동학군이 묻힌 이정골에서의 위령제는 ‘현령’과 ‘호신’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이미 영매인 ‘현령’과 함께 위령터의 위치를 잡아 놓았다.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오늘 함께한 ‘해야’ 삶 일부를 알아가니 오늘 만남이 기쁘다. 함께 이 여정을 잘 호흡할 수 있길 빈다.

6월 1일 ‘길위’랑 마지막 점검을 위한 순례를 하였다. ‘길위’는 전국 동학군 흔적을 찾아 이미 동학 100일 순례를 한 바 있다. 마지막 동학군의 일부가 어떻게 죽고 살았는지 하는 ‘길위’의 궁금증을 자연스레 해소되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김지하의 친구이면서 동학군인 월북한 윤노빈의 책을 빌려보는 나눔시간도 가졌다.

매번 이 길을 걸으며 난 소풍을 즐겼다. 1894년 겨울 이 길을 그들은 손과 발이 추위에 얼어 마비된 채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며 처절함 속에서 넘나들었을 것이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그들과 나 그리고 우리를 생각해 본다.

오후 6시쯤 북암 이병골에 도착하니 ‘호신’, ‘아시반’, ‘현령’, ‘복실’, ‘무산’이 이미 와 있었다. 골짜기 가장 큰 밤나무 옆 위치에 잡아놓은 제사터를 중심으로 작은 나무들을 치고 울퉁불퉁한 땅을 판판하게 골랐다.

여러 명이 함께하니 1시간 만에 작업이 끝났다. 도로입구부터 뻗어 있는 풀은 ‘무산’이 말끔히 제초하였다. 이병골 위령제에서의 모든 행사진행은 ‘호신’에게 부탁하였다. 준비할 제물에 산과 최근에 생긴 근처 산소에 올릴 술까지 모두 챙겼다. 내려오는 길에 석양이 아름답다(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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