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혈통, 역사, 문화가 같다는 것은 단일민족이었음을 말한다.

 

글: 박용규(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독립투사들이 분단국가 만들려고 독립투쟁하지 않았다

국어학자들의 국어독립투쟁있어 언어가 분단되지 않았다

역사학자, 국어학자들이 목숨걸고 싸워 지킨 것이 국학이다

 

▲일제강점기 또 하나의 역사투쟁가 백남운 선생. 그는 지구가 존속하는 한 조선민족도 영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은 일제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자로 찍힌 선생의 사진이다.

말과 글이 말하는 한국 정체성

올해는 분단 73주년이 되는 해이다. 73년 전 우리민족은 일제와 싸워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자력으로만 광복을 쟁취하지 못해 분단되었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은 분단국가를 수립하자고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 민족통일이 되었을 때, 독립운동이 완수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민족의 경우 남북으로 국토, 국가, 민족이 분단되어 있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언어가 분단되어 있지는 않다. 언어는 민족의 혼을 담는 그릇이다. 일제강점기 주시경·이극로·최현배·김두봉을 포함하여 국어학자들이 목숨을 바쳐 우리 말글을 연구하고 지켜냈기에, 언어의 분단을 막을 수 있었다.

이극로는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정신과 생명이 있을진댄 그 민족은 영원불멸할 것이니, 또한 행복은 필연적일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극로의 우리 말글과 민족 인식은 오늘날에도 보편타당하다.

민족 구성의 핵심 요소로 같은 혈통, 같은 역사, 같은 문화, 같은 언어를 들 수 있다. 과거 우리의 경우 단일 민족국가였다. 혈통, 역사, 문화에서 동일하였다. 그 가운데 같은 언어와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민족 통합을 촉진시킬 수 있는 요소를 확보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금강산과 개성 관광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북측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개성에 같을 때에 안내원이 설명해 주는 고려의 왕건, 공민왕, 문화유적, 정몽주와 선죽교, 박연폭포에 대한 내용은 필자가 학교에서 가르쳐온 고려 역사와 똑같았다. 같은 말과 같은 역사는 소통하는 데에 어려움을 없게 하였다.

유럽 여행에서도 유럽 연합의 실상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화폐를 쓰고 있었고, 국경이 없이 왕래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민족은 유지되고 있었다. 필자가 여행한 독일, 체코, 프랑스, 아일랜드는 각각 자신들만의 말과 글을 쓰고 있었다.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니, 민족은 영원불멸할 것으로 확신하였다.

해방정국기에 조선학술원을 이끌어 간 백남운도 우리 민족의 불멸과 민족 구성의 공통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조선민족은 혈연·지역·언어·문화·역사적 운명 등의 공통성을 구유(具有)한 단일민족으로서 수천 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이례의 존재(중략) 지구의 수명이 존속하는 한에는 조선민족도 영속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남과 북의 우리 민족은 민족 구성의 여러 요소가 같으니, 한강물과 대동강물이 전부 마르더라도 우리 민족은 영원불멸할 것이다.

이처럼 민족 구성의 핵심 요소로서 언어는 중요하다. 언어학은 역사학과 더불어 국학 분야의 핵심 학문이다. 먼저 국학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국학자들의 언어관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어서 국학의 대표 학술단체였던 조선어학회와 그 활동을 고찰하고자 한다.

 국학이란 무엇인가

우선 국학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이극로는 국학을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역사와 지리 등의 조선 고유의 학문”이라 정의하였다. 그는 국학이 “自를 바로 인식”하게 해 준다고 주장하였다.

정열모는 “국학이란 것은 민족단위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의 총칭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개 민족의 문화 전체를 연구하는 학을 그 민족의 국학이라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각각의 나라마다 국학은 있다고 하면서, 우리의 국학은 “조선 문화의 전체를 연구하는 학”을 지칭한다고 하였다.

그는 국학은 “한 민족의 문화 곧 민족정신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계속해서 그는 “국학이라 하면 얼른 국어 국사를 연구하는 것으로 알지마는 실상은 국어 국사는 국학연구의 기초가 되고 입문이 되는 것이지 국어 국사의 연구가 국학의 전체는 아니다.

정치, 문학, 공예, 심지어 의복 음식까지 모두 민족사상의 발로이기 때문에 그 모두가 국학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라고 국학 분야를 광의적으로 해석하였다.

정열모는 국학연구의 목적이 단지 옛것을 찾자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옛것을 알아서 새 길을 찾고 아름답게 하려는 데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국학 연구는 우리 문화진전과 민족흥망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였다.

박은식은 <한국통사>(1915)에서, “국어 국문 국사”를 국학으로 보면서, 국학과 국교를 국혼의 영역으로 소속시켰다. 문일평은 협의의 조선학을 “조선어 조선사를 비롯하여 순 조선문학 같은 것을 주로 지칭”한다고 하면서, “조선학을 잘 만들어 세계문화에 특수한 기여가 있어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안재홍은 본래 의미의 조선학(협의의 조선학)을 “조선의 고유한 것, 조선문화의 특색, 조선의 독자한 전통을 천명하여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보자”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조선학의 연구 방법을 “조선역사를 기초로 하여 연구”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는 “세계문화에 조선색(朝鮮色)을 짜넣는 것”이 조선학에 부여된 임무라고 강조하였다.

이로써 보면 우리의 국학은 조선학 또는 한국학을 가리킨다. 필자는 나와 이웃,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지키는 학문을 국학이라고 본다. 국학의 양대 기둥이 되는 학문은 국어학와 국사학이다. 언어와 역사는 국학 연구의 핵심 분야이다.

언어 분야의 국학자로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최현배, 이윤재, 이병기, 정열모, 신명균을 들 수 있다.

역사 분야의 국학자로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이윤재, 김승학을 들 수 있다. 박은식은 ‘국혼’을, 신채호는 ‘낭가사상’을, 정인보는 ‘조선의 얼’을, 문일평은 ‘조선심’을, 안재홍은 ‘민족정신’을, 이윤재는 ‘조선아(朝鮮我)’를 강조하였다.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