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동군 친일 부역자들, 대한민국 이렇게 지배했다.

수정: 2018.03.21. 14:28

 

글: 장하림(수묵인물화가)

 

일본 관동군 만주군관, 정일권, 백선엽, 박정희는

해방 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나

이들은 어떻게 신분세탁하여 영웅으로 둔갑할 수 있었나

중일전쟁 이후 만주 대일독립전쟁은 어떻게 동북항일연군이 주도할 수 있었나

 

▲일본 관동군 군관 출신 백선엽(사진 왼쪽) 대장이 관동군 간도특설대 출신 박정희(왼쪽에서 세번째) 5사단장등 예하 부대장들의 보직신고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서기1961.05.16. 반란으로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백선엽을 서기1969.10. 교통부장관으로 임명한다(편집자 주).

일본 관동군 만주군관 육군중령 정일권은 조선인으로는 당시 최고 높은 장교였다. 백선엽은 한중항일 연합군 유격대 토벌에 앞장섰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관동군 작전지휘부 참모였다. 그는 해방 이후 독립군으로 위장해 해방 조국에 돌아온다.

백선엽은 재빠르게 고당 조만식의 비서로 위장했고 박정희는 광복군 지청천, 김원봉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는다. 정일권은 장개석의 지원을 받으며 독립군 흉내를 내다 여운형 건국준비위원회에 들어가려하지만 과거가 드러나 다시 만주로가 소련군에 들어간다. 정일권은 소련군에서 더러운 친일의 실체가 드러나 철장신세가 되지만 가까스로 탈출해 조만식의 비서, 백선엽의 도움으로 서울에 무사 귀환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과거를 묻지않는 ‘멋진 분’, 이승만이었다. 친일 부역자 처단위해 설치된 ‘반민특위’도 막아주고 김창룡, 노덕술 친일 악질 경찰들을 다시 경찰로 복귀시켜주니 이들은 그야말로 물고기가 물 만난 격이었다.

▲서기 1957.02.07. 이승만에게 미국최고훈장을 수여받고 있는 정일권 육군대장. 그는 해방 전 까지 충량한 황군으로  나카지마 잇켄(中島一權)으로 살았다(편집자 주).

만주군관 출신들이 미국군 정부 지원을 받으며 육, 해, 공군을 만들고 사관학교도 창설하고 정일권은 총참모총장이 된다. 또 자신들 친일 부역 과거를 아는 여운형 등 ‘껄끄러운’독립투사들 제거에 나선다. 미군정의 ‘콜라보’ 충견 양성계획에 힘입은 민족지도자, ‘레지스탕스’ 제거작전이었다.

6.25동란과 휴전, 그리고 4.19 혁명을 거쳐 5.16군사반란을 일으킨 다카기 마사오, 박정희 군부 독재 정권이 탄생한다. 친일부역자들의 황금기를 확 열어 젖혔다. 박정희가 일본 관동군 만주 간도특설대 출신이다 보니 만주군관 출신들이 군권을 완전 장악한다.

▲왼쪽이 박정희가 일왕에게 '충성혈서'한 것 보도한 만주일보(서기1939.03.31.)기사. 오른쪽은 만주 일본 관동군 군관시절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다카키마사오). 박정희(서기1917-1979) 일생은 이렇다. 박정희에서 다카키마사오(高木正雄)로, 다카키 마사오에서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오카모토 미누루에서 다시 박정희로, 조선청년 교사에서 일본군 장교로, 일본군 장교에서 대한민국 장교로, 남로당 '빨갱이'에서 반공주의자로, 충성스런 군인에서 군사반란 수괴로, 육군 대장에서 대통령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부하 김재규 장군에게 사살되어 생을 마감한다. 그는 정일권과 백선엽과는 다르게, 오카모토 미노루라고 두 번 창씨 개명을 했다. 처음 창씨개명한 이름이 고목정웅高木正雄(다카키마사오)인데 여기에는 조선인 박정희 흔적이 남아있다. 木과 正자가 그것이다. 박정희 성인 박朴에 목자가 있다. 또한 박정희에서 정正자가 또한 같다. 앞서 정일권과 백선엽의 창씨개명에도 조선인 이름과 성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조선인이 아닌 완전한 일본인이 되기 위해 조선 이름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완전한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것이 오카모토미노루(岡本實)다. 그는 충량한 '황국신민' 이자 용맹스런 '황군'으로 영원히 살고 싶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제국이 갑자기 망해 버리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다. 위 사진 오른 쪽에는 이런 자신의 의지를 말해 주기나 하듯이 일본도를 굳게 잡고 있다. 저 일본도로 우리 광복군들을 얼마나 베었을지는 그 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박정희 독재정권 타도를 부르짖은 마지막 광복군 장준하 선생이 그 정권하에서 타살되었다는 것이다. 일제의 '용맹스런' 마지막 '황군'이 조선의 마지막 광복군을 끝까지 추격하여 죽였다. 비극 현대사 한 장면을 선명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박정희는 죽어서도 숭배받고 있다. 박정희 동상을 전국에 세우고 국가세금 포함  2천억 여원을 들여 경북 그의 고향에 박물관, 공원, 거대한 동상 등을 세워놓고 북한 김일성, 김정일 부자처럼 '반신반인'으로 숭배하고 있다. 이것도 만족하지 못하는지 그는 그의 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추앙 받았다. 더구나 실정失政으로 쫓겨나 감옥에 있는데도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성조기 성도들의 숭배를 받고 있다(편집자 주).

이들은 만주군관 후배 박정희를 적극 후원했다. 그리고 박정희는 이에 보답했다. 정계, 재계, 종교계 등 모든 영역이 이 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제 남은 건 명예뿐이었다.

이들은 서기1920년 청산리전투 이후 자신들이 활동한 시대의 모든 독립투쟁사 조사 금지령을 선포한다. 반면에 이 놈들은 민족 영웅으로, 애국지사로 둔갑하기 시작한다.

이 친일부역자들은 서북청년단 창설자, 종교 노벨평화상 ‘탬플턴’ 상을 받은 영락교회 한경직 등 자칭 우익 보수 개신교 교단을 적극 키우고 부흥에 앞장선다. 이들은 교회들의 견고한 무조건적인 반공과 무신론 타파의 종교맹신 충성을 이용한다.

▲일본 관동군 출신 백선엽(93세)이 서기2013.08.29. 미8군 명예사령관 임명을 받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그는 우상으로 떠 받들어졌다. 그는 해방 전 까지 '충량한 황국신민'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로 살았다(편집자 주).

또 보도연맹 창설자, 영락교회 오재도, 선우기성을 지원하며 빨갱이 선동자(프로파간다)를 만들어 수십만, 수백만 백성을 학살하며 공포감을 조성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수회 부역자, 이병도를 적극 지원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 일제식민사관이 깊고 넓게 뿌리내린다. 이 친일부역 역도들은 반공으로 신분을 세탁하여 자신들의 과거 친일 반역 짓을 덮어버리고 반공애국지사로 죽은 후 국립 현충원까지 장악한다.

마지막 관문은 수십만 항일애국지사들을 빨갱이로 둔갑시키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일권, 백선엽의 간도 특설대는 소련공산당 동북항일련군 토벌의 영웅들을 빨갱이로 몰아 사냥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독립투쟁과 애국의 길을 갔다고 책도 내고 대학교 학장도 하며 철저히 정체를 위장하고 포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 위장술과 신분세탁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하면서 발각되기 시작한다. 한.중 수교가 되자, 만주에 생존해 있던 당시 활동했던 사람들의 증언과 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만주 동북항일련군, 조선혁명군, 항일투쟁사 전문 역사학자 조문기와 동북항일련군 3로군 사단장 백족, 주보중의 항일련군 유격일지가 공개되며 놈들의 반인족 친일파 간도특설대의 더러운 진실이 실증학으로 만천하에 모조리 까발려진다.

▲영원히 일본제국 '천황페하'의 황군으로 살고자 했던 박정희, 오카모토 미노루,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고서도 충량한 황군, 일본 관동군 간도특설대 시절이 그리웠는지 군복냄새가 나는 차림으로 말을 타고 청와대 경내를 회젓고 다녔다. 간도특설대 당시 독립군 학살에 나섰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다. 그는 '황군' 장교로서 당연히 일본도를 차고 말을 타고 다녔을 것이다. 사진은 박정희가 군복냄새가 나는 차림으로 말을 타고 있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 나오는 복장에 논란이 많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독립군 학살하던 간도 특설대 당시와 유사한 차림으로 취미 삼아 승마를 즐겼다는 것이다(편집자 주).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고서도 일본군 군복 냄새가 나는 차림으로 말을 타고 날렵하게 경내를 활보하는 일제 마지막 '황군' 오카모토 미노루(박정희). 요즘 성 범죄를 폭로하는 이른바 '나두(Me too)' 운동이 유행하고 있다. 이 폭로로 그동안 성인군자 모습을 하거나 멋있게 포장되었던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있다. 박정희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이다. 멋있게 포장되어 반신반인 반열에 올랐지만 그의 실상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 역사 진실이다(편집자 주).

놈들이 빨갱이로 몬 동북항일련군의 역사는 이러했다.

서기1920년 임시정부의 만주 서로군정서 북로군정서는 수십개의 주만駐滿 항일독립 무장단체를 규합해 국내진공작전을 펼친다. 봉오동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했지만 이후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간도 경신참변을 막지 못한다. 이어 연해주로 작전상 후퇴했다. 그러나 쏘련 공산당 계열 독립군과 만주에서 이주한 독립군사이에서 서로 살상하는 자유시 참변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만주 서간도에서는 신민부, 정의부, 참의부로 무장투쟁은 계속된다. 김좌진, 김동삼, 오동진 장군의 협력으로 조국유일당 국민부로 통합, 조선혁명군으로 재편성한다.

서기1931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 독립군과 중국 항일군은 연합군으로 싸우게 된다. 화력지원을 받기위한 유일한 조선 혁명군의 외길 선택이었다. 양세봉 장군의 전사 이후 조선인들의 조선혁명군은 일본 관동군에 전멸위기기에 놓이게 된다. 중국항일영웅, 양정우 장군은 동북항일련군을 서기1934년에 창설하고 살아남은 조선인 항일유격대 조선혁명군과 연합하게된다. 1, 2, 3 로군에 조선군을 편입해, 조선인 친일파부대 간도특설대를 선두로 하여 일본 관동군과 항전한다.

▲동북항일연군 양정우 총 사령관(편집자 주)

당시 중국의 도움없이 조선군만으로 항전한 김일성장군의 조국광복회가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이것은 내말이 아니다. 중국 만주족 조문기 박사의 실증학의 기록을 옮겨적은 것이다. 그러니 생 트집 잡으려거든 만주족 역사학자 조문기 박사에게 하기 바란다. 검색하면 바로 뜬다.

서기1940년 중국 양정우 장군이 간도특설대를 선두로 한 일본관동군에 의해 기관총 수십발을 맞고 전사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서기1942.08.03. 우리 의병장 왕산 허위장군의 조카 허형식 장군도 전사한다. 수십만 간도 특설대의 토벌에 밀린 동북항일련군은 어쩔 수 없이 소련령으로 후퇴한다.

후퇴할 때 최용건, 김책, 강길 장군 등의 항일투사들과 김일성 장군도 있었다. 소련군내 조선 독립군부대를 동북항일련군 교도려로 편성했고 사단장은 주보중이었다.

▲ 왕산 허위장군의 조카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 허형식 장군은 서기1942.08.03. 만주 흑룡강성 청봉령 소릉하 계곡에서 일제 만주국 관동군 전투경찰 30여명의 습격을 받고 부하2명과 전투를 벌이다 산화했다. 당시 허형식 장군은 부하 2명과 깊은 계곡에서 굶주린 배를 채우고자 밥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밥 짓는 연기를 보고 일본군이 추격해 왔다. 허형식 장군이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더이상 빠져나가기 힘들자, 자신의 배낭 속에 들어있던 중요문서를 부하들에게 거네주며 탈출하라고 했다. 그러나 부하들은 듣지 않고 함께 싸웠다. 이어 부하 하나가 피격되어 쓰러졌다. 이에 허형식 장군은 '명령'이라며 빨리 문서가지고 탈출하라고 소리쳤다. 이어 적을 자신에게 유도하여 탈출도왔다. 결국 온 몸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당시 나이 33세였다(편집자 주).

주보중은 동북항일연군 유격일지에 당시 투쟁사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위키백과 등에는 아직까지도 소련군내 조선 독립군 동북항일련군 교도려를 빨갱이로 몰고 있다. 정일권, 백선엽, 박정희등 일제 충견, 만주군관 출신들의 신분세탁을 위해 철저하게 왜곡한 조작질이다.

서기1948년 4월 남과 북의 300여 민족 지도자들이 평양에 모여 남북 단일정부 수립에 만장일치 협의했고 국호는 조선인민공화국으로 남북 전 인민 70%의 찬성으로 정해졌다. 현재 평양쑥섬에 이날을 기념하는 큰 기념탑 기록이 이 사실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다급해진 미군정과 이승만은 4개월 후 남쪽에 대한민국 정부를 세운다. 남북 전 인민의 뜻을 버린 더러운 만고의 반역 매국노들 친일파 숭미 사대부역 자들이 남과 북을 가르며 비극의 처참한 남북분단시대를 연 것이다.

그리고 소련의 우호 신탁을 뒤집어 보도하여 반공 빨갱이 사냥을 시작해 나갔다. 대대적인 자국민 학살로 이승만의 자유당을 유지했고 공화당, 민자당, 한나리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놈들은 아직도 동북항일련군은 빨갱이며 형제인 북조선과 소통하는 것, 교재하는 것, 진실한 역사를 말하는것도 국가보안법 찬양고무죄로 옭아매고, 종북으로 몰며 정일권, 백선엽, 박정희의 뒤를 따르며 누리던 황금시절을 그리워하며 몸부림 치며 발악하고 있다.

그러나 실증학적 증거들로 놈들의 더러운 친일파 매국노의 역사는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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