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타락은 동물왕국과 마찬가지로 사회 상식, 이성의 종말을 뜻한다.

글: Edward Lee(자유 기고가)

 

 

"檢, 다스 120억 '직원 횡령'  결론"

이것이 수치스러운 우리의 현실이다.
그간 수도없이 언론미디어를 통해 이명박의 죄과가 낱낱히 드러났다. 그 수하는 물론 정경유착의 고리로 관련된 자들의 자백이 있었다. 그래서 절대다수인 국민 75%가 그의 구속을 원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온 국민에게 박탈감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악의 카르텔이다.

 

▲ 지난 2008.02.25.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명박이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가면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그가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고 풍자하고 있다. 그 만큼 그는 대통령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 급강하 추락의 시작이었다. 집권기간동안 대한민국 부패지수는 최악을 달렸다. 이명박씨와 관련된 '다스' 회사 120억 손실을 그 회사 일개 경리직원의 횡령사건으로 검찰이 결론지었다. 그런데 그 경리직원은 그대로 아무 문제없이 '다스'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대선후보를 수사했던 정호영 특검의 범죄의혹을 덮어준 것이라고 여론이 들끓고 있다(편집자 주).

한국사회에서 사법정의는 무엇인가?
지난 수 십 년간 우리사회의 법기능은 권력의 도구일 뿐임이 명백하게 또한번 드러난 셈이다. 국민에게 사법정의는 결코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이 치욕스럽지만 그들이 줄기차게 보여주는 명확한 우리의 사법현실이다.

이런 사회는 힘있는 자들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동물의 왕국이다. 이런 사회에 상식과 이성이 있을리 만무하다. 지금 다른 한편에서 드러나고 있는 성추행의 더러운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이것이 이성을 지닌 사람의 사회가 맞는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관용과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한마디로 '정글'일 뿐이다.

이성의 결여는 오래된 인류역사다. 절대 다수가 크리스찬인 한국사회에서만 보더라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류의 시조라고 하는 아담에게 원죄설을 씌워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지었다는 비이성적인 것이 바로 그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나. 죄라는 것은 어떤 행위로 비롯되는 것인데 그렇게 원죄설을 씌워 가르치고, 또 그것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여기서 인간의 이성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오래된 종교문화가 주종관계가 뚜렷한 신앙관을 형성해 왔고, 우리사회에 만연한 갑을관계를 만들어 온 것이라면 지나치다고 할 것인가. 지난 수 십 년간의 비민주적인 삶으로 볼 때 인간들이 너무도 비이성적이고 자아가 결여되었다고 밖에 보지 못하겠다. 자아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주종관계가 분명한 이런 신앙관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모르는 신앙이 가능한가? 그저 믿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한 샤머니즘에 다름아니다. 여기서 이성은 있을 수 없다. 이성이 없는 인간사회는 그저 동물의 왕국일 뿐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인간의 가치는 결코 그게 아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들이 진리인양 행세하고 있다. 우리사회 전반이 그렇다. 그래서 이명박, 이재용 따위의 이런 말도 안되는, 이해불가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누구이고, 무엇인가?

아담의 원죄설은 사실 인위적으로 왜곡되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두 계명, 즉 선택의 문제를 너무 곡해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범한 것으로 교회는 가르쳐왔다. 그는 세상에 오자마자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계명을 받았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상충되는 계명으로 그는 첫번째 계명을 준수할 수 없게된다. 지혜가 없어 남자, 여자를 알지 못한 때문이다.

이는 복음의 매우 중요한 단초다. 이로 인해 시작부터 다르게 되었으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사실 인간에 의해 세워졌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 모든 것이 집행되고 있다. 처음부터 성경을 왜곡해서 일어난 일이며, 결과적으로 수많은 교회가 난립하게된 궁극적인 배경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를 모르고는 신앙이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종교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이렇게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머리로만 갖는 의식은 행하기 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얘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런 비이성적인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신뢰할 수 있나. 사법의 기능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해야 그 신뢰를 바탕으로 순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사법체계가 이렇게 몰상식한 궤변의 연속일 수 있는가. 이런 것이 통용되는 사회는, 우리는 또 무엇인가?

여기서 느끼는 박탈감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의사회에 대한 희망을 자포자기하게 만든다. 이는 공동체 삶을 망치는 일로 국가를 망치는 일이다. 누가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직장이 없어 이민을 고려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 시민들의 눈에도 범죄사실이 명확한데 허구헌날 영장이 기각되고, 돈있다고 해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면 누가 그 형평성을 신뢰하고 법을 지키고자 할 것인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에서 법은 모두가 지키기로 약속한 규범이다. 그런데 그런 약속을 특정인 몇몇이 마음대로 유린한다면 그 약속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사법부를 전혀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약속은 파기다. 파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로운 체제를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이 있고 이성이 있는 인간이라면 직접민주의의 형태로 사법부와 권력에 맞서야 한다. 선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해 지키는 것이다. 지키지 못하는 선은 아무 의미가 없다. 민주주의와 정의가 꼭 그렇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촛불만이 답이다. 행동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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