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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관의 중국 우리 역사 현장 답사

기사승인 2016.10.08  19: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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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천지에서 개천(開天)을 경험하다

기사수정: 서기2016.10.12. 16:29

 

 

③ 7월22일(수) 이도백하⟶백두산 천지⟶통화

▲ 개천하는 백두산 천지. 인간의 말이 실상을 나타내기에 얼마나 형편없는지, 백두산 천지에 서면 실감한다. 압도하는 천지기운 앞에 말문이 막힌다.

- 백두산 천지에서 개천(開天)을 경험하다.

이도백하 지역은 아마도 세계에서 공기가 제일 청정한 곳 중 하나일 것이다.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오늘은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의 천지를 본 다음 400여 km를 달려 통화까지 가는 일정이다. 호텔을 나서 40km를 달려 백두산 등정 매표소까지 가야 한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다. 2차선 도로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계속된다. 길 양쪽은 자작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와 이름 모를 나무들이 꽉 찬 밀림이다. 매표소에 도착하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매표소 안은 인산인해다.

▲ 백두산 매표소 앞에 사람들로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다.

아! 나는 그동안 쌓은 덕이 부족해서 백두산 천지를 오늘 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행 중 한 분은 백두산에 네 번째 왔는데 천지를 아직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김병기 박사는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천지를 단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백두산 정상의 날씨가 예측하기 어려운 탓이다. 천지의 날씨가 쾌청해지는 행운을 기대해보기로 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 사람들이 절대 다수다. 그만큼 중국의 형편이 나아진 탓일 것이다. 표를 끊고 한 참 기다렸다가 소형버스를 갈아 탔다. 산길을 제법 달리자 해발 1,700m 쯤 되는 장백폭포 아래 쪽 두 번째 환승장이다.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이곳까지는 오름이 매우 완만하다. 여기서부터 급경사다. 벤즈사가 만든 SUV로 갈아타고 정상으로 향했다. 급경사 꼬부랑길의 한 쪽은 그야말로 낭떠러지이다. 무서워서 오금이 저린다. 해발 2,000m 쯤 되는 곳부터 나무가 없다. 고산 야생화가 드문드문 보일뿐인데 말로만 듣던 솜다리다. 솜다리는 서양말로 에델바이스다. 산의 색깔은 온통 우중충한 잿빛이다. 토양이 화산재이기 때문이다. 매표소 입구 주변 개울의 물도 잿빛이었다.

여전히 구름이 끼고 는개비가 내리는 날씨인데 해발 2,500m 쯤 되는 정상 주차장에는 서울 명동 거리보다 사람이 많다. 다행이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천지에 오르는 길은 세 갈래이다. 제일 왼쪽 길의 끝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인지 막아놓았다. 천지에 오르는 길 입구에서 줄을 섰다. 낭떠러지에 면한 좁은 길에 사람이 몰려들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를 수 있도록 줄을 세워 순차적으로 사람을 올려 보낸다. 천지까지 200m 쯤 되어 보인다. 워낙 사람이 많아 복잡해서 모두들 천천히 오를 수밖에 없다. 다행이 숨이 차지는 않았다.

▲ 백두산 정상 바로 아래 주차장을 마구잡이로 만들어 놨다.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정상의 둘레 길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구름이 끼어 있지만 사람을 살짝 헤집고 내려다보니 천지 일부분만 보이는데 아래가 까마득하다. 다소 고소공포증이 있는 필자는 조금 앞으로 나아가 내려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 앉아서 쉬고 있는데 서쪽에서 햇빛이 나더니 순식간에 구름을 걷어간다. 천지 둘레의 봉우리들이 맑게 보이고 장엄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게 찾아온 행운이다. 장엄할 뿐만 아니라 성스러움 마저 느껴지는 황홀한 광경이다. 내 일생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아마도 아득한 옛날 하늘이 처음 열리는 개천(開天)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개천의 감동을 이곳 백두산 정상에서 맛보았다. 백두산이 왜 민족의 영산인지 알겠다.

백두산이 해발 2,744m이고 천지가 2,189m이니 555m 위에서 천지를 내려다 본 것이다. 오른 쪽으로 천문봉과 철벽봉 사이로 천지의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이 달문(達門)인데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아래 환승장에서 달문까지 등산이 가능하지만 역시 날씨가 도와야 한다. 달문에서는 천지에 발을 담글 수 있지만 거기에서는 천지의 수면이 눈높이이기 때문에 별로 장엄하지는 않을 것이다. 달문을 나선 물길은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화보 등에서 자주 본 장백폭포를 만들고 이어 압록강, 송화강, 토문강이 된다.

중국 쪽에서 천지에 오르는 길은 우리 일행이 오른 길과 서쪽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고 한다. 서쪽에서 오르는 중간에는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야생화 군락이 있다고 한다, 언젠가 그 길로 꼭 다시 천지에 올라 보리라. 북한 쪽에서 오르는 길은 중국 쪽보다 훨씬 급경사라고 한다. 통일이 되기 전이라도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 개마고원에서 백두산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백두산 근참기』에서 육당 최남선은 개마고원 쪽에서 천지에 올랐다. 백두산 정상 주차창에서 아래 환승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무서워서 경관을 감상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날씨가 좋아진 것이 정말 다행이다. 환승장에서 백두산 정상을 다시 바라보니 새삼 남북분단이 민족의 비극이라는 사실을 알겠다. 삼지연 비행장에 내려 오를 수 있는데 돌고 돌아 중국에서 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천지 한 가운데로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 지난다.

▲ 백두산 천지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백두폭포, 저 많은 물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기에 일년 365일 일정하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불가사의와 그 경이로움에 또 한번 '멍 때리기' 가 된다. 속세의 모든 망상을 녹여 버린다.

천지는 청나라를 세운 아이신자로워(애신각라, 愛新覺羅) 씨족의 발상지이다. 옛날 옛적에 하늘에서 은고륜(銀古倫) 정고륜(正古倫) 불고륜(佛古倫) 세 선녀가 천지에 내려와 목욕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갑자기 검은 새(현조, 玄鳥)가 하늘에서 빨간 괴일(주과, 朱果)를 떨어뜨렸는데 막내 불고륜이 이 과일을 먹고 임신을 하게 되었다. 불고륜은 몸이 무거워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해 지상에 남고 두 선녀는 하늘로 날아올라 갔다. 불고륜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포고리옹순(布庫里雍順)으로 청나라 황제들의 조상이다. 청나라 역사책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우리 동이족 조상 탄생 설화에는 이와 유사한 설화가 여럿 있다. 우리와 조상 탄생 설화를 공유하고 있으니 여진족은 우리 형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에게만 영산이 아니고 여진족과 거란족에게도 영산이었다.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청나라에서는 자연물인 이 백두산에 큰 벼슬을 내리고 매년 신하를 보내 천제를 지냈다. 그러나 지금 거란족은 민족 전체가 거의 사라졌고, 여진족인 만주족도 이름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만주족 인구가 중국에서 1천만이 넘는다고 하는데 현재 만주에서 만주족 말을 가르치는 초등학교도 없다고 한다. 여기저기 만주족 자치기라는 지명은 살아 있다. 우리는 독자적인 국가를 유지하고 정체성도 유지하고 있다. 거란족과 만주족의 역사를 우리 역사의 일부로 인식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들은 오랑캐가 아니다. 제국을 건설했던 형제 민족이다.

환승장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동북쪽을 바라보니 장백폭포가 멀리 보이는데 수량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폭포로 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는 듯하다. 일행 중 젊은 축들은 폭포 보러 떠났다. 안성호 군이 기어이 장백폭포 사진을 찍겠다고 한다. 일행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환승장 근처부터는 경사가 아주 완만하다. 장백폭포에서 내려온 물은 순차적으로 크고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곳 연못은 우리 민족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도 이 근처 어디에선가에 생겨났다.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제법 큰 연못이 있는데 아마도 여기가 나무꾼이 선녀의 날개옷을 감춘 곳일 게다.

백두산 산록을 벗어나 통화로 가는 길은 400여km이다. 산골길과 고갯길로 이어진다. 그런데 산기슭에 인삼을 재배하는 밭이 계속 나타난다. 인삼재배 기술의 핵심인 옮겨심기와 해가림 농법은 19세기 무렵 우리나라 개성 사람들이 개발했고, 다른 나라에 전파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곳에서 인삼을 재배하고 있을까.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인삼 씨앗이 연간 3톤을 넘었다는 언론 보도가 생각났다.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인삼을 재배하면 우리나라 인삼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것인데 걱정이 된다. 인삼 씨앗은 보통 4년생 인삼에서 채취한다. 아마 중국은 한국에서 더 이상 인삼 씨앗을 수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뿌리를 생산하는 대신 인삼 씨앗을 채취해서 재배면적을 늘려나갈 것이다. 인삼 씨앗은 값이 비싸다. 이곳 백두산 산록이 인삼 재배 조건이 좋지 않은 지역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인삼이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전에도 우리나라 평안북도 강계 사람들이 강을 건너 이 지역에서 산삼을 캤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인삼 재배 농민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산삼세포를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해서 산삼 진액을 생산하고 있지만 농가들이 어려워질 것 같다.

조선족자치주 경계를 지나자 한글 간판이 사라진다. 백산(白山)시 중간쯤 돠는 곳에 임강(臨江)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임강은 강 건너 북한의 중강진과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와중이 민생이 피폐해지자 유성룡의 제안으로 중강진에 ‘중강개시’라는 시장을 개설해서 조선과 중국이 교역한 결과 민생에 크게 보탬이 되었다는 곳이 이곳이다. 왜 이 외진 곳에 중국과 교역하는 시장을 열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백산시 경계를 지나면 통화(通化)시 지역이다.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통화시 지역에 들어서 한참 달리자 왼쪽으로 제법 큰 강을 끼고 길이 계속된다. 혼강(渾江)이라고 한다. 혼강이 비류수다. 고구려 추모왕이 혼강가 어디에다 도읍하지 않았던가. 밤 9시 경에 통화만복특대주점(通化蔓福特大酒店)에 도착했다. 소박한 호텔이다. 백두산에 오르려는 우리나라 학생 단체 여행객들을 만났다.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가지고 간 라면과 양 꼬지를 시켜 저녁을 해결했다. 점심과 저녁 모두 라면으로 때운 날이다.

글: 허성관(전 행정자치부장관)

허성관 koreahit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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